팻말에 불타오르는 횃불이 새겨져 있다. 코네티컷주의 옥스퍼드에 있는 해리엇 비처 스토우가 살던 집 앞에 세워진 안내판의 모습이다. 그녀의 가족이 23년간 살았던 아담한 2층 건물이다. 바로 옆에 있는 웅장하고 화려한 마크 트웨인의 집과 달리, 마치 수채화처럼 단아하고 정겹다. 초록색 잎이 풍성한 나무들과 어울려 회색에 가까운 연둣빛을 띤 집은 안정적이고 포근한 분위기다.
문을 열면 쿠키를 굽는 냄새와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가득할 것 같다. 안으로 들어가니 한쪽 벽면에 유명 인사들의 사진과 그들이 스토우 부인에게 남긴 말들이 적혀 있다.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은 “당신이 바로 이 위대한 전쟁을 일으킨 작은 부인이군요.”라고 했는데, 이 말은 오늘날까지도 유명하다.
책상 주위에 마치 그녀가 구겨버린 듯 종이 몇 장이 널려 있다. 짙은 색의 잉크병이 그녀의 육필 원고가 쓰인 종이를 묵직하게 누르고 있다. 오랫동안 마음에 품어왔던 노예 매매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전하기 위해 쓴 소설 「톰 아저씨의 오두막」은 책으로 출간되자마자 베스트셀러가 되어 첫해에만 30만 권이 팔렸다. 노예제도를 찬성하던 남부와 북부 간의 대립을 첨예하게 만든 불씨가 되었다. 결국 남북전쟁이 발발해 1863년 링컨 대통령이 노예해방선언문에 서명했다.
스토우 부인은 미국뿐 아니라 유럽 전역으로 초청을 받아 강연을 다녔다. 유럽 각지를 여행하며 모은 예술작품들도 많았지만, 그림에 소질이 있었던 부인이 직접 그린 그림이 집 안 곳곳에 걸려 있었다. 그리스도 정신에 따라 노예 제도의 철폐를 주장하고, 실제로 도망한 노예를 숨겨주거나 도피시키는 등의 사회적 활동에 참여했다. 보수적인 백인들의 본거지에서 자신의 입장을 분명하게 드러내는 일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책상 위에 작은 저울이 놓여 있다. 그녀는 노예 해방을 위한 글을 쓰다가 문장이 막히면 그 저울을 올려다보며 중심을 잡지 않았을까. 피부색으로 사람을 저울질할 수 없다. 인간은 누구나 평등하다는 것을 마음에 새기기 위한 도구는 아니었을까.
아직도 형태는 다르지만, 곳곳에서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서로를 향한 인종차별이 알게 모르게 이어지고 있다. 피부색뿐 아니라 거주 환경이나 경제적 요건 등으로 서로 금을 긋고 무시하는 행위로 상처를 준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아래 사람 없다. 이 시대의 정의를 고발할 진정한 작가가, 스토우 부인처럼 진정한 용기로 풀어낼 글쟁이가 필요하다. Pen의 힘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한 작가의 작품이 인류의 역사에 큰 변화를 주었다. 그녀의 집을 나서는데, 거실에 초상화가 눈길을 끈다. 그리 밉지도 예쁘지도 않은 평범해 보이지만, 다부진 입매와 오뚝한 코, 단정한 모습이 우아하다. 피아노 위에는 꽃무늬 찻잔이 놓여 있다. 마치 그녀가 차를 마시며 피아노를 연주하다가 아이들이 부르는 소리에 잠시 자리를 비운 것처럼 느껴졌다. 스토우 부인은 흑인들의 어머니로 불평등과 부조리를 밝히는 등불의 상징이다.
이현숙 재미수필문학가협회 이사장은‘미주크리스천문학’(1998)‘수필문학’으로 등단 한국수필 해외문학상, 재외동포문학상, 미주펜문학상, 국제펜 해외작가상을 수상했다. 저서로‘사랑으로 채우는 항아리’‘숲에 무지개가 내리다’‘ 두 남자와 어울리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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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숙 수필문학가협회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