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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복점 외길 47년 ‘DC 전설의 은퇴’

2025-01-14 (화) 07:50:50 정영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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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맞춤 양복 장인 김광수씨 ‘아름다운 현역 이별’화제

양복점 외길 47년 ‘DC 전설의 은퇴’

지난달 은퇴 전에 김광수씨가 고객의 양복을 가봉해 주고 있다. 왼쪽은 ‘Christopher Kim’s Custom Tailoring’ 스토어 전경.

“고객은 무대 위 스타, 나는 무대 뒤 서포터” 일념
고객들 “내 인생의 희노애락과 함께 했다” 아쉬움

양복점 외길 47년, 맞춤 양복 및 수선의 장인 김광수씨(78, 미국명 크리스토퍼 김) 은퇴 소식이 알려지자 지역주민들과 고객들이 크게 아쉬워하고 있다. 어떤 사람은 그동안 수고했다며 꽃다발을 가져다주고, 어떤 사람은 ‘땡큐 카드’에 정성스레 감사의 글을 적어 보내기도 했다.


지난 1977년 워싱턴 DC 노스웨스트 M 스트릿에서 크리스토퍼 김스 커스텀 테일러링(Christopher Kim’s Custom Tailoring)’을 오픈해 운영해 온 시간이 어느새 반백년 가까이 됐다.
오픈 당시 31세였던 그가 이제 80을 눈앞에 두고 지난달 양복점을 미국인 새 주인에게 넘겨주었다.


경남 창녕 출신으로 성균관대학 행정학과를 졸업한 그가 전혀 예상치못한 ‘양복’의 길로 방향 전환을 하게 된 것은 부친의 권유에서였다. 부산과 서울에서 양복점을 운영해 온 그의 부친은 1973년 메릴랜드로 취업이민 온 후에도 양복점 일을 했으며 1976년 뒤따라 유학온 아들에게 양복점 운영을 맡겨 김씨가 자연스레 그 길을 걷게 됐다. 그는 재단사는 아니었지만 아버지에게 양복을 배워 가봉에는 완벽한 솜씨를 발휘해 많은 고객을 확보했다.

1977년 DC 위스컨신 애비뉴에 아버지와의 동업으로 작게 시작한 스토어는 1983년에 김씨 단독으로 독립하면서 현재의 5,500스퀘어피트 장소로 이전해 42년을 한 자리에서 영업하며 고객들과 울고 웃었다.
시간이 흐르며 정치인, 변호사, 로비스트, 각국 외교관들과 지역주민들이 그의 고객이 됐으며 가족과 같은 정을 이어갔다.

그는 ‘옷은 곧 그 사람이고, 그 사람은 옷’이라는 신념 아래 의상이 그 사람을 담아내도록 애썼다. 그는 “고객들은 무대 위 스타였고, 나는 무대 뒤에서 서포트하는 사람이라는 자세로 일했다”고 말했다.

이런 성실한 노력의 결과로 지난 2010년에는 워싱턴 매거진(ashingtonian Magazine)이 선정한 DC 지역의 ‘12개의 훌륭한 양복점(12 Terrific Tailors)’에 선정됐다. 또 2012년에는 내셔널 매거진 디테일(Details)이 선정한 전국 우수 양복점 리스트에서 DC 지역 양복점으로는 유일하게 이름을 올렸다.

지난 7일자 워싱턴 포스트 오피니언 섹션에는 그의 은퇴를 아쉬워하는 오랜 고객의 기고문이 실리기도 했다. ‘DC 전설의 은퇴(A D.C. legend retires)’라는 기고문에서 글렌 데이빗슨(알링턴, VA)씨는 “한국 이민자인 크리스토퍼 김은 고급 정장을 공급하는 사람일 뿐만 아니라, 50년간 정치인 등 이 지역의 부유층, 평범한 주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탁월한 재단사이기도 했다”고 회고했다. 데이빗슨 씨는 덕 와일드 전 버지니아 주지사의 비서실장을 역임한 금융인으로 부부가 김씨의 단골이었다. 그는 “아메리칸 대 3학년이었던 1975년에 처음 크리스 김을 만났다. 구직 면접을 위해 정장이 절실히 필요했다. 그의 맞춤형 양복 덕분에 인터뷰를 잘 끝내 취업에 성공했고 이후 결혼식이나 큰 일이 있을 때마다 정장을 맞춰주며 인생의 희로애락을 함께 했다”고 밝혔다. 이어 “크리스는 오랜 친구였고 소중한 친구였다. 그의 은퇴를 보면서, 자신의 기술을 완벽하게 만들고 고객에게 최대한의 배려와 존중으로 봉사하는 데 평생을 바친 한 사람을 기억한다. 그가 많이 그리울 것”이라고 애틋함을 표했다.

은퇴 후 처음으로 ‘자유’를 갖는 올해의 계획으로는 문학과 역사를 공부하며 글쓰기(그는 20년 전 등단한 수필가이기도 하다), 집 텃밭서 농사짓기, 낚시 등 그동안 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했던 것을 마음껏 할 예정이다.

두 딸을 외교관(주 이집트 카이로 미국대사관 영사)과 방송인(CBS-TV 드라마 담당 부사장)으로 키워낸 그는 부인 김신애씨와 게이더스버그에 거주하며 성김안드레아 한인성당에 출석 중이다.

<정영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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