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태양이 떠올랐다. 새해에 대한 설렘과 희망으로 벅차다. 새로운 기회와 가능성으로 가득 찼기 때문이다. 70을 넘긴 나이에 걸맞은 성장, 건강, 관계, 시간 활용 등 마음가짐을 새롭게 해본다. 주어진 365일을 향한 첫발을 떼는 다짐이랄까.
옛 어르신들은 나이가 궁금할 때 무슨 띠냐고 묻곤 했다. 타 문화권에서 잊고 살았던 십이 간지, 열두 동물의 상징을 통해 인간과 우주와의 조화를 생각해본다. 그 동물에 비유한 좋은 점에 의미를 부여한다.
올해는 뱀띠 을사년(乙巳年) 푸른 뱀의 해다. 뱀이라는 단어는 듣기만 해도 징그럽고 오금이 저린다. 꿈틀거리는 기다란 몸뚱이, 발 밑을 스윽 스쳐가는 소리, 미끈하고 축축한 피부의 촉감, 허공을 날름거리는 기다란 혀, 사람을 노려보는 듯한 차가운 눈초리. 징그럽고 사악한 동물로 가늠하여 멀리하고 꺼리는 존재다.
더욱이 아담과 이브를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게 만든 장본인으로서 교활함의 대명사가 되지 않았는가? 뱀이 혀를 날름거리는 모습을 사탄의 유혹, 이간질, 수다의 상징으로 여겼다. 사실 뱀은 두 갈래로 갈라진 혀를 날름거려 냄새를 맡을 뿐인데 말이다. 이렇듯 우리 인간은 뱀에 대한 선입견을 품고 있다. 최근에는 파충류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고 좋아해 기르는 사람이 있긴 하다. 혐오감 뒤에 숨겨진 오해를 풀 수 있는 다른 면에 관심을 가져본다.
뱀은 고대부터 신비롭고 지혜로운 동물로 여겨져 왔다. 날카로운 직감과 상황을 파악하는 능력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해답을 찾아내는 능력을 상징했다. 고대 그리스에서 뱀은 지혜 신으로 아테네의 상징물이었다. 성서 마태복음에 ‘뱀처럼 슬기롭게’라는 말씀이 있다. 지혜와 예언력의 상징이다. 나 또한 경험을 토대로 한 지혜를 발휘해보자는 다짐을 가져본다.
뱀은 겨울잠에서 깨어나기 때문에 사라졌다가 나타나는 재생, 성장할 때 허물을 벗는다는 환생이라는 의미가 부여되었다. 끈질긴 생명력을 가진 불사, 영생의 동물로 여겨졌다. 이는 새로운 시작과 변화를 뜻한다. 과거의 틀을 벗고 더 나은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삶에서 불필요한 습관이나 생각을 내려놓고 새로운 목표를 세워보련다.
뱀은 많은 알과 새끼를 낳는다. 다산하는 뱀은 풍요와 재물, 가정에 복을 주는 신으로 변신했다. 뱀은 업, 지킴이, 집 구렁이라 하여 가옥에서 살면서 집을 지키는 신이 되기도 했다. 어르신들은 집마다 큰 구렁이가 하나씩 터를 잡고 재물과 복을 가져다준다고 믿었다. 그저 웃어넘길 근거 없는 이야기는 아니다. 초가지붕은 축축하고 따뜻해 쥐가 올라와 살았고, 구렁이는 먹이를 따라서 집으로 들어왔다는 것이다. 집안에 구렁이가 있으면 뱀이 들어오지 못하므로 재물을 가져다주는 업신으로 취급받은 것이다.
2025년 을사년에는 대한민국 광복 80주년을 맞는다. 여든, 팔순, 산수[傘壽]는 나이 80을 이르는 말이다. 나이 들어도 내재한 역량이 성장하는 사람은 늙지 않는다고 했다. 광복 80주년을 맞이하는 우리 조국 역시 성숙한 민주 국가로서 역사에 대한 자긍심으로 미래 비전을 제시하며 나아가길 바란다.
뱀을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상징하는 바가 다르듯, 내가 바라보며 추구하는 것들이 또 다른 가치를 만들어 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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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숙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