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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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엌

2024-12-17 (화) 이진경 페어팩스,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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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없는 나라
적도가 지나는 곳에 차린 직장
불꽃이 늘 피어있고
그 옆에서 구슬땀을 흘리는 남자와 여자

밖은 겨울이지만
여기는 삼복더위,
기름이 끓고
살코기는 구워지고
불에 데인 손,
칼에 찔리고 베인 손가락

배고픈 사람들은 기다릴줄 모른다
예의를 모른다
성급한 고객의 기호에 맞추어
장단을 친다
스테이크를 구워내고
감자를 구워내고
샐러드를 잘라내는
숨 쉴 틈도 없는 공간에서
부부는 연옥의 성자가 된다

달이 중천에 뜨면
부부는 겨우 집으로 돌아와
쓰러져 잠든다
달이 가고, 해가 가고
아이들은 어느새 둥지를 떠나고
사랑할 시간도 없이
밤마다 고향으로 가는 꿈을 꾼다

<이진경 페어팩스,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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