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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 칼럼] 귀향

2024-12-17 (화) 한영 재미수필가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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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귀향’을 읽었다. 가나계 아메리칸 작가 야 제이시( Ya Gyasi)’가 쓴 역사를 담은 픽션 소설이다. 하녀였던 한 여인이 주인의 딸을 낳고, 멀리 떨어진 다른 부족에게로 도망가서 새로운 남편을 만나서 또 딸을 낳았다. 아버지가 다른 자매가 서로 경쟁 관계인 부족 안에서 자라나게 되었다. 소설은 그 후 8대에 걸쳐 각기 다른 삶의 모습을 보여준다. 시대가 변해가면서 각 세대가 살아가는 방법도 달라진다. 그 모든 8세대가 소설의 주인공이다. 아프리카에서 노예로 팔리는 고통과 시련은 믿기 어려울 정도로 비참하다. 노예 매매는 아프리카 해안을 점령한 영국 군인과 상인들에 의하여 이루어 졌다고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아프리카 부족들도 이웃 부족을 공격하고 포로로 잡아 노예 상인에게 넘겼다는 사실에 놀랐다. 조그만 이익을 위하여 어떤 일이든 하고야 마는 그 끝없는 인간 욕심 앞에 절망감을 느꼈다.

그동안 미국에 살면서, 강제로 팔려 온 아프리카 아메리칸의 힘겨운 역사는 단편적으로 들어왔으나 무심코 흘려들었다. 책에서는 그 후의 분리 정책(Segregation), 죄수 임대 (Convict Lease), 대 이주 (Great Migration) 같은 역사적 일들과 개인이 그 가운데를 살면서 지나가는 모습을 보여 준다. 주인공의 인생을 따라가며 역사의 흐름을 보고 내용을 더 잘 알게 됐다.

이 소설의 시작은 노예 매매가 성행하던 때인 1750년대이다. 그때 우리나라에서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 이조 시대의 성군이었던 정조 왕의 시대였으나 운이 없이 태어난 사람에게는 역시 힘든 세상이었을 것이다. 한 인간이 세상에 던져질 때. 정해진 환경이나 조건이 주어진다. 불리한 조건이라도 의지로 극복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인생은 본인 자신에 의하여 많이 달라질 수 있지만 어찌해 볼 수 없는 삶은 비참하다. 인생은 공평하지 않다. 서양이나 동양이나, 아프리카 바닷가거나 조선의 한 시골에서나 특별한 지위를 가진 일부를 제외하고는 인간이 인간대우를 받지 못한 시절이 있었다. 이제는 빈부의 차이가 곧 힘의 차이가 되긴 했지만, 그 동안 세상은 좋은 방향으로 흐른 것 같기는 하다.


소설 속에서 미국에 온 후손들의 삶은, 세대가 넘어가면서 조금씩 변화를 갖게 된다. 전 부모 세대의 아픔과 노력과 실수를 껴안고 가지만 다음 세대는 또 다른 문제들을 만나고 해결하며 앞으로 나아간다. 환경을 이겨내지 못하면 실패한 인생으로 끝나고, 참고 견디며 삶의 목표가 뚜렷한 인생은 성공한다. 각기 다른 줄기로 살아온 이복 자매의 후손 제8세대 둘이 함께 가나의 바닷가에 선다. 선조들이 노예가 되어 갇히고 팔려 가던 그곳은 이제 관광지가 되었다. 뜨거운 화염과 차가운 바다 물속에 갇혀 있던 것 같던 선조들의 삶을 이해하고, 그 역사와 화해한다.

아프리카에서 태어나서, 아메리카라는 낯선 곳에 노예로 끌려와 시작한 삶이 비참하고 힘든 것엔 틀림없지만, 고향을 떠난 이민 생활도 팍팍하고, 요즈음도 불우한 환경에서 태어난 사람들의 삶이 힘들긴 마찬가지다. 누구든지 ‘전 세대의 상처’는 전달받지 말고 똑바로 서서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으며, 건강한 정신으로 바로 서서 걸을 수 있다면, 지나간 삶의 고통을 마주하면서도 편안해질 수 있을 듯하다.

소설, 귀향에 있는 한 대목이다. 세상을 바꾸고 싶어 사회 운동을 하다가 좌절한 아들에게 온갖 역경을 이겨낸 그의 어머니가 말한다. -너만 투쟁하고 사회 운동을 한 건 아니야. 나는 꾸준히 열심히 내 삶을 살아왔어, 그것이 나의 사회운동이었어 디아스포라, 우리들의 삶을 말하는 것 같다.

<한영 재미수필가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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