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겨울 추위는 유독 일찍 찾아온 것 같다. 사람이 느낄수 있는 체감 뿐 아니라 세상이 주는 불신, 불안이 최고조에 달하는 현실이 추위만큼이나 몸과 마음을 떨게 한다면 나만이 겪는 현상일까? 상식이 비상식이 된 도덕 불감증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오래전에 들었던 “가짜가 판 친다”라던가 요즈음에는 “세상이 또 왜 이래?”라는 노래가 유행하는 것을 보면, 무심코 지나치기에는 너무나 황당한 TV 뉴스가 온통 짙은 먹구름으로 깔려있다. 며칠 전 길거리에서 멀쩡하게 걸어가는 남자를 그것도 등 뒤에서 총을 겨누는 장면은 경악스럽다 못해 입이 쩍 벌어지는 해괴한 현상이었다. 우리 속담에 핑계없는 무덤이 없다는 말이 있듯이 범행의 동기여부를 떠나서 행위 그 자체가 너무 비열하고 잔인하다. 총격을 가한 후, 자기 만족의 웃음까지 짓다니....
이 나이가 되도록 살림에만 전념해온 나 자신도 돌아가고 있는 정치판도를 보면 때때로 울화가 치민다. 한국은 어떻고, 미국은 또 어떤가? 당파싸움에 목소리가 크면 이긴다는 식의 고성과 삿대질이 난무하니 너나없이 질리고 귀가 따갑다. 또 피부로 느끼는 장바구니 물가는 올라 가면 올라 갔지 내려 올 줄을 모른다. 그러나 이런 한심한 현실속에서도 해마다 연말 이 때쯤이면 그나마 마음을 훈훈하게 해 주는 작은 미담이 있어 소개해 본다:
한국의 한 방송국에서 방영했던 재개발을 앞둔 어느 소도시의 초등학교 옆 편의점 이야기이다. 수십년간 이 편의점을 운영해 온 아저씨의 평범한 행동이 TV에 비춰지게 된것이다: 이 편의점은 학교에 오가며 들르는 아이들의 놀이터이자, 참새들의 방앗간이 되어 마치 동화속 같은 이야기들이 아이들의 입을 통해 세간에 알려졌다.
방과 후 과자를 사 먹으러 가게로 몰려 온 한 무리의 아이들 중에는 돈이 없어 과자를 사 먹지 못하고 서성이는 아이들, 과자를 사 들고 맛있게 먹고 있는 친구들의 모습을 부러운 듯이 보고있는 꼬마들에게 편의점 아저씨는 몰래 과자를 쥐어주는 따뜻한 손길, 단골 손님 아이들을 자식처럼 돌보아 주는 아저씨의 친절함을 학습한 이들 아이들이 후일 자라서 이같은 친절을 주위사람들에게 베풀게 되리라. 그래서, 영국 시인 워즈워드는 “아이들은 어른의 아버지 (The child is father of the man)”라 하지 않았던가?
재개발로 인해 어쩔수 없이 편의점이 문을 닫게되자, 텅빈 가게 안을 들여다 본 아이들은 아쉬움과 그리움으로 편의점 유리창에 빼곡히 쪽지 편지를 적어 고마움을 전한다. 유리창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아이들의 손편지야말로 세대를 뛰어넘는 사랑의 실체를 보여주는 좋은 본보기가 아닐까. 초로의 편의점 아저씨가 남긴 말이 귓전을 스친다: “예쁜 꽃을 보면 꽃이 즐겁겠어요, 아니면 사람이 즐겁겠어요”
저무는 한 해의 끝자락에는 미국의 최대 명절인 크리스마스가 기다리고 있다. 사람들이 많이 왕래하는 거리나 상가 앞에는 어김없이 빨간 자선냄비와 구세군 아저씨의 딸랑딸랑 종소리가 울러 퍼지면 오가는 사람들은 저마다 십시일반 가난한 이웃을 위해 지갑을 연다. 우리가 몸담고 있는 맑고 밝은 사회는 정녕 그 누구도 아닌 우리들 보통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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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순 메리옷츠빌, M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