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이 합창 교향곡을 작곡할 시기에는 청중들의 박수소리 조차 구분할 수 없을 만큼 청력을 거의 상실한 상태였다고 한다. 그런데 이 음악이 악보로서는 유일하게 세계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될 정도로 유명하게 된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불리한 조건이 한몫했다는 이유도 지적되고 있다. 즉 인류의 끝없는 응전의 역사 속에서 ‘합창 교향곡’이야말로 인류에게 안겨주는 도전정신이 살아있는 곡이라는 것이다. 사실 이곡은 베토벤이 작곡한 곡 치고는 여러 허점이 존재한 작품이기도 했다. 우선 베토벤이 성악적으로 완벽한 작곡가가 아니었기 때문에 발표당시부터 노래하기가 매우 힘든 곡이었고, 청력이 없는 상태에서 작곡했기에 음악적인 균형이나 화음면에서 당시에는 연주 불가능이라는 판정이 내려질 정도였다고 한다. 그런데 이런 허점들은 세월이 흐르면서 오히려 실험정신으로 가득한, 색다른 음악이라는 긍정적인 측면으로 받아들여지게 됐고 결국 작곡가가 남긴 최고의 교향곡이라는 명성을 안겨 주게 되었다.
사람들이 베토벤을 좋아하는 이유는 여러 이유가 있을 수 있겠지만 아마도 음악에 대해 진심인 베토벤의 열정이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베토벤의 교향곡 9번 합창은 인류가 남긴 가장 감동적인 문화 유산으로 꼽히곤 하는데 흔히 ‘환희의 송가’라고 불리우는 4악장의 휴머니즘적인 가사와 숭고한 선율미 때문이다. 작곡된지 2백년이 흘렀지만 이 곡은 여전히 전세계적으로 송년 축제 음악 등으로 널리 연주되고 있고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을 때도 합창 교향곡이 연주될만큼, 인류의 평화와 화합을 다지는 정신적인 결속에도 큰 이바지를 하고 있다.
SF 오페라가 지난 24일 김은선 지휘로 베토벤의 교향곡 9번 합창을 선보였다. 이날 연주회는 합창 교향곡이 초연된지(1824년) 2백주년을 맞았다는 명분이 뒷받침된 것이었지만SF 오페라가 굳이 김은선 지휘자와 더불어 합창 교향곡을 선보인 이유는 이 역사적인 작품을, 비록 2백년 전 베토벤 자신은 들을 수 없었지만 그 감동을 다시한번 재현하고 싶은 음악인으로서의 소망이 뒷받침되기도 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열정, 음악에 대한 진심… 이런 요소들을 빼고 베토벤의 음악을 들을 수는 없는 것이겠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본 결과, 열정과 진심 빼고는 별로 남는 것이 없는 연주회이기도 하였다.
이날의 연주회는 오디언스(청중)에게는 열광적인 연주회, 비평가들에게는 다소 차가운 평가를 내려진 연주회였다. 청중들이 열광한 것은 4악장 ‘환희의 송가’가 워낙 압도적으로 연주된 때문이었고 전문가들이 실망한 것은 4악장을 제외하곤 1,2,3악장 모두 수준급 연주라고 하기엔 오케스트라가 너무 실험적(?) 수준에 머물렀다는 평가때문이었다. 아마도 ‘트리스탄과 이졸데’같은 긴 작품을 공연하고 있는 오페라 오케스트라의 입장에서, 리허설(연습 시간)이 부족하지 않았나하는 추측도 있지만 아무튼 이날의 연주회는 절반의 성공에 그치고 말았다. 그러나 전문가들의 평가야 어떻든 발표 당일만큼은 기립박수가 무려 10여분 이상 이어진 대성공적인 공연이었다. 흔히 ‘끝이 좋으면 다 좋다’라는 말이 있다. 이날은 오케스트라보다는 합창과 독창 등이 대미를 장식한 성악적 축제의 날이기도 하였다. SF 오페라 합창단의 압도적인 목소리… 소프라노 Jennifer Holloway, 메조 소프라노 Annika Schlicht, 테너 Russell Thomas, 베이스 Kwangchul Youn(연광철) 등은 이날의 공연을 환희의 날로 장식한 일등 공신들이었고 4악장에서 만큼은 오케스트라, 김은선 모두 흠잡을 수 없을만큼 완벽했다. ‘오 친구여, 이런 소리가 아니다! 더욱 즐겁고 희망찬 노래를 부르자…’ 합창의 압도적인 울림이 공연장을 가득 메운 이날의 공연은 사람들이 왜 그토록 합창 교향곡에 열광하는지를 다시한번 보여준 날이기도 하였다.
김은선은 오페라 지휘외에도 지난 2월 뉴욕 필하모니에서 데뷰 연주회를 가졌고 작년에는 베를린 필, 서울 시향 등도 지휘했다. 내년에는 LA 필, 보스톤 심포니 등의 지휘까지 예약해논 김은선이야말로 이제 베이지역을 벗어나 세계적인 지휘자로서의 그 위상이 격상하고 있다. 1,2,3악장이 이날의 공연의 발목을 잡았다는 전문가들의 평가와 그 숙제를 뒤로하고, 김은선이 앞으로 어떤 행보를 이어나갈지 그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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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