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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색이 달라도 친구가 될 수 있을까?

2024-10-28 (월) 유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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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격, 분노, 수치심 등 관계 유지 어려워

▶ 한발 물러서는 것도 방법, 예의 지켜야

정치색이 달라도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주디 호(왼쪽), 로라 보겔

정치색이 달라도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정치적 갈등이 두드러지면서 관계 유지를 위한 책(I Love You, but I Hate Your Politics)도 화제가 됐다.




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미국의 다음 대통령이 누가될지, 누구도 쉽게 장담할 수 없는 치열한 접전이 펼쳐지고 있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이러한 대화는 하지 말아야 하며 함부로 지지 후보를 이야기하는 것도 금기가 됐다. 특히 가족이나 친구, 가까운 사이일수록 더욱 조심해야 한다. 일부는 정치적 차이로 인해 관계를 끊어야 할지 고민하고 있으며 심지어 이러한 갈등으로 가정이 깨지는 사례도 늘고 있다.

▲정치적 갈등의 원인


과거에도 선거를 앞두고 이러한 문제가 불거지곤 했지만 많은 전문가들은 올해 훨씬 더 심각한 상황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법의학 신경심리학자인 주디 호(Judy Ho) 박사는 최근 CBS 인터뷰에서 “당신이 만나는 사람들 가운데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도 있을 것이고, 어떤 사람들은 지나치게 몰두해 개인의 일상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며 “사회생활과 개인생활에서 이러한 딜레마가 증가하는 것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고 말했다.

한인사회에서도 정치를 주제로 대화를 나누다 보면 종종 화를 내고 끝내는 경우가 있다. 화를 내는 사람도 어느 순간 자신이 왜 이렇게 화를 내는지 모른다고 한다.
호 박사는 그의 저서 ‘애착의 새로운 규칙’(The New Rules of Attachment)을 통해 이러한 현상을 분석했다.

때로는 자신이 좋아하는 인기 스타가 특정 후보를 지지하게 되면 평소 정치에 관심 없던 사람들도 갑자기 전쟁(?)에 뛰어들게 된다. 최근 소셜미디어에서 벌어지는 선거전은 인신공격은 물론 거짓정보도 넘쳐나고 지나치게 감정적이다. 현실에서 쌓였던 화가 온라인에서 폭발한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그렇다면 나와 반대되는 정치성향의 사람들과 친구로 지낼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정치적 갈등은 각자의 정체성 또는 자신의 핵심 가치와 깊이 얽혀 있기 때문에 관계를 유지하는데 매우 중요한 문제”라며 “신념에 도전이 가해지면 이는 훨씬 더 개인적인 공격처럼 느껴지기 때문에 방어기제가 작동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사람들이 자신의 신념과 모순되는 진술을 접했을 때 뇌의 반응과 신체적 위협에 직면했을 때의 반응이 유사하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관계를 유지하는 방법

서로 다른 정치성향이 개인적인 위협으로 느껴지게 되면 더 이상 대화는 불가능하다. 싸우거나 피할 수밖에 없으며 이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심리학자인 로라 보겔(Laura Vogel) 박사는 “관계를 끊어버리게 되는 정치적 갈등은 경제 정책과 같은 문제보다는 사회적 이슈에 대한 견해차가 더 많다”며 “특히 서로 다른 사회적 견해는 정체성 문제, 내가 누군지, 나의 신앙은 무엇인지 등과 연결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관계를 유지해야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이를 극복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전문가들은 “먼저 관계를 평가해야 한다”며 “이 사람이 나의 삶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치는지, 직장에서 얼마나 자주 마주쳐야 하는지, 또는 친구인지 가족인지 등도 고려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호 박사는 “그들과 완전히 관계를 끊을 수 있는지를 생각해보고 어떤 식으로든 관계를 이어가야 한다면 서로의 신념에 대해서는 절대 말하지 말고 갈등 극복에만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보겔 박사는 “그들과 친구가 되지 않는 것이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생각해보라”며 “충격, 분노, 수치심 등 우리의 판단을 방해하는 것들이 있지만 그러한 감정을 가라앉히고 스스로 반성해 볼 필요도 있다”고 제안했다. 그는 “만약 이러한 관계라도 중요하게 생각된다면 성급하게 또는 충동적으로 관계를 끝내기 보다는 한발 물러서 속도를 조절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며 “정답은 없고 스스로 결정할 문제”라고 말했다.

2019년 발간된 진 세이퍼(Jeanne Safer) 박사의 책(I Love You, but I Hate Your Politics)이 지금까지 화제가 되는 이유도 여전히 극심한 갈등 속에 관계유지를 바라는 사람들이 많다는 반증이다.

▲현실과 소셜 미디어의 경계

현대인들의 겪는 부조리, 현실과 소셜 미디어의 경계를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현실의 친구와 달리 소셜 미디어에서는 노골적인 ‘친구 차단’이나 ‘언팔’(unfollowing) 없이도 음소거(muting)를 통해 관계를 정리할 수 있다.

그러나 때로는 지나치게 편향적인 소셜미디어 친구들끼리 다른 누군가를 공격할 수도 있고 자신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를 외면하게 된다.

전문가들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대화의 즐거움, 좋은 친구들은 호기심을 갖고 대화에 참여하고 서로 다른 견해를 공유하게 된다”며 “서로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 좋은 친구들과의 예의 바른 대화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유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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