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주 최초 한인촌 사진 전시회, 40일 여정 돌입
▶ 워싱턴한인커뮤니티센터에서 내달 27일까지
장태한 교수가 19일 파차파 캠프에 대해 특강을 하고 있다.
미주 최초 한인촌 파차파 캠프 사진 전시회가 19일 오프닝 리셉션과 함께 40일의 여정에 돌입했다.
워싱턴한인커뮤니티센터(이사장 김태환)는 이날 1층 대강당에서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캘리포니아주 리버사이드에 존재한 파차파 캠프 사진 전시회 오프닝 리셉션을 갖고 전시회 시작을 알렸다.
오프닝 리셉션에는 이번 전시회를 기획한 UC(University of California) 리버사이드 대학 산하 김영옥 재미동포연구소 소장으로 미주 한인 이민 역사를 연구해 온 장태한 교수가 도산 안창호 선생이 만든 파차파 캠프의 의미에 대해 강연했다.
장태한 교수는 특별강연을 통해 “파차파 캠프는 도산 안창호가 만든 도산 공화국으로 그는 이곳에서 삼권분립과 민주주의를 실험했으며 이것은 후일 상해 임시정부가 만들어지는데 밑거름이 됐다”면서 “1903년 첫 이민자들이 하와이에 정착했지만 이들은 모두 농장으로 흩어진 반면, 1905년부터 1918년까지 당시 가장 부촌인 리버사이드시의 1532 파차파 애비뉴 선상에 위치한 판자촌인 파차파 캠프에는 본토 한인 거주자가 800명 정도였을 때 한인이 최대 300명까지 거주했었다”고 말했다.
리버사이드시는 이것을 기념해 파차파 캠프가 있었던 곳에 문화적 관심 지점을 의미하는 ‘Point of Cultural Interest'이라는 사인판을 설치했다.
장 교수는 “안창호 선생은 1902년 하와이를 거쳐 샌프란시스코에 부인 이혜련 여사와 도착했는데 그의 인터뷰 기사는 당시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Chronicle)이라는 신문에 크게 보도됐다”면서 “그는 상해임시정부의 주요인사로 독립운동가이자 흥사단을 이끈 교육가만로 알려졌지만 왕정체제를 부인한 혁명가이자 통합주의자이자 민주주주의자이기도 했다”고 말했다.
장 교수는 “안창호 선생은 1904년 3월 소수민족에 대한 차별이 심한 샌프란시스코를 떠나 리버사이드에 도착, 1905년 파차파 캠프에 한인들에게 일자리를 주선하기 위해 직업소개소인 한인노동국을 창립한다”면서 “파차파 캠프는 미주 최초의 가족중심의 공동체였고 상해 임시정부에 앞서 대한민국 민주공화제의 시작은 미국 리버사이드에서 시작됐다”고 말했다.
김태환 이사장은 환영사를 통해 “미주 한인 이민 121주년을 맞아 멜론 재단의 특별 후원으로 이곳 워싱턴에서 1905년부터 1918년까지 존재한 파차파 캠프와 함께 안창호 선생을 알릴 수 있어 기쁘다”면서 “특히 차세대들이 이 행사를 통해 우리의 뿌리를 알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날 축사는 최광희 미주한인회총연합회 수석부회장, 스티브 리 워싱턴한인연합회장, 문숙 워싱턴광복회장, 마크 김 전 버지니아 주하원의원, 허정미 주미대사관 참사관(영사)이 했다.
김태환 이사장은 강연을 한 장태한 교수와 최병근·김태원 커뮤니티센터 이사와 군자 퀵 명예이사와 김유숙 사무국장에게 감사패를 전달했다.
리셉션 후 참석자들은 커뮤니티센터가 제공한 식사를 하고 2층에 마련된 사진 전시회장을 둘러보며 파차파 캠프의 의미와 도산 안창호 선생의 발자취를 되돌아봤다.
워싱턴에 이어 사진 전시회는 내년 1월부터 2월까지는 뉴저지, 내년 6월부터 7월까지는 시카고, 내년 8월부터 11월까지는 리버사이드에서 진행된다. 지난 6월부터 9월까지는 안창호 선생이 처음 도착해 정착한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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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