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고액 디덕터블 플랜 바꿔?…보험료 낮춰볼까”

2024-10-21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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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입 비율 2006년 4% → 2024년 27%
▶필요 진료 미뤄 조기 치료 놓칠 수도

▶ 정기 검진 미루다 더 큰 의료비 발생
▶보험료보다는 건강·재정 상태로 결정

“고액 디덕터블 플랜 바꿔?…보험료 낮춰볼까”

건강 보험료가 급등하면서 고액 디덕터블 플랜으로 갈아타는 가입자가 늘고 있다. 고액 디덕터블 플랜 가입자 사이에서 필요한 진료를 미뤄 조기 치료 기회를 놓치는 등 부작용 사례가 나타나고 있어 신중한 가입이 필요하다. [로이터]

건강 보험 가입자에게 연말 전에 꼭 챙겨야 하는 일이 있다. 기존에 가입한 보험 내용과 보험료 등을 검토하고 필요시 보험을 교체하는 일이다. 직장을 통해 건강 보험에 가입한 약 1억 5,400만 명의 가입자는 10월부터 11월 사이가 건강 보험을 변경할 수 있는‘가입 기간’(Open Enrollment)이다.‘건강 보험 개혁법’(ACA·Affordable Care Act)에 따라 정부가 시행하는‘마켓 플레이스’(Market Place)를 통해 보험에 가입한 경우 오는 11월1일부터 12월15일 사이 필요시 보험을 교체할 수 있다.

건강 보험 가입과 관련, 최근 몇 년 사이 보험료를 낮추기 위해 본인 부담금인 ‘디덕터블’(Deductible)을 높이는 추세가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디덕터블은 일정 금액까지 환자가 본인 비용으로 의료비를 지불한 뒤에 건강 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보험 제도다. 보험 전문가들은 디덕터블을 높이면 매달 내야 하는 보험료를 낮춰 당장 비용 절약이 발생하지만 예상치 못한 높은 의료비가 발생하거나 정기 검진을 제대로 받지 못하면 더 큰 의료비가 발생할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고 주의를 요구한다.

■고액 디덕터블 가입 비율 급등


건강 보험 플랜은 전통적으로 두 가지 유형으로 구분된다. ‘PPO’(Preferred Provider Organization)는 참여하는 의사가 많고 전문의 방문을 위한 주치의 승인이 필요 없는 플랜이다. 다른 플랜에 비해 디덕터블과 ‘기본 진료비’(Co-Payment)가 저렴한 것이 장점이지만 월 보험료가 높아 저소득층의 경우 가입이 부담스럽다. PPO는 정기적인 기본 진료 외에도 전문 의료 서비스가 자주 필요한 환자에게 적합한 플랜이다.

고용주를 통해 ‘HMO’(Health Maintenance Organization) 플랜에 가입한 직장인도 많다. HMO는 월 보험료가 PPO에 비해 낮은 것이 장점이지만 전문의 진료를 받으려면 주치의 승인이 필요하고 때로는 승인 기간이 긴 것이 단점이다.

최근 PPO와 HMO 가입자 비율이 월 보험료는 낮고 디덕터블이 높은 플랜 가입 비율에 크게 못 미치는 것으로 조사됐다. 비영리 건강 정책 연구 기관 KFF에 따르면 2006년 4%에 불과했던 고액 디덕터블 가입 직장인은 2024년 27%로 급증했다. 같은 기간 PPO 가입 비율은 60%에서 48%로 감소했고 HMO 가입 비율도 20%에서 13%로 낮아졌다.

■필요 진료 미루는 등 부작용

최근 디덕터블 인상 통보를 받고 놀란 건강 보험 가입자 많다. ‘가족 보장’(Family Coverage)의 경우 HMO와 PPO의 연간 디덕터블은 평균 약 3,000달러로 올랐고 고액 디덕터블 플랜의 경우 약 5,000달러에 달한다. 이른바 오바마 케어로 불리는 ‘건강 보험 개혁법’(ACA)에 따라 건강 보험 플랜은 유방암 및 대장암 검진 등 기본 예방 검진 시 환자 진료비가 없는 고액 디덕터블 플랜을 포함하도록 규정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액 디덕터블 플랜 가입자들은 의료비를 절약하기 위해 다른 예방 치료나 선택적 치료를 받지 않거나 연기하는 경향을 보이는 것으로 조사됐다.

또 다른 사례에서는 연간 디덕터블 기준을 맞추기 위해 선택적 치료나 검진 서비스를 연말로 미루는 환자도 적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심장 질환이나 당뇨병과 같은 만성 질환을 가진 환자의 경우 조기 치료 기회를 놓칠 수 있기 때문에 고액 디덕터블 플랜 가입에 따른 부작용이 우려된다.

조지타운 대학 건강보험 개혁 센터의 사브리나 콜렛 디렉터는 “본인 비용으로 의료비 부담이 가능한 고소득자에게 고액 디덕터블 플랜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라며 “반면 낮은 보험료의 유혹에 빠지기 쉬운 저소득층은 고액 디덕터블 플랜 가입에 신중함이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건강 저축 계좌로 의료비 마련

2003년 의료비 부담을 줄이기 위한 목적으로 ‘건강 저축 계좌’(HSA•Health Saving Account) 프로그램이 시작됐다. HAS는 의료비 충당 목적으로 급여 중 일부를 입금할 수 있는 비과세 저축 계좌로 고액 디덕터블 플랜 가입자 사이에서 큰 인기를 얻었다.

고용주들은 고액 디덕터블 플랜 가입자를 대상으로 HAS 서비스를 제공했고 적립금을 매칭하는 일부 고용주도 있다. HAS 적립금으로 투자도 가능하고 새 직장으로 이전도 가능해 지금까지도 많은 직장인 이용하는 의료비 적립 프로그램이다.

HAS가 고액 디덕터블 플랜에 가입하는 저소득층 의료비 지원을 위해 시작됐지만 일부 고소득자의 절세 전략으로 사용된다는 지적도 있다. ‘의회 조사국’(Congressional Research Service)이 2017년 ‘연방 국세청’(IRS) 자료를 분석한 바에 따르면 연 소득 20만 달러~49만 9,999달러의 고소득자 중 약 17%가 HAS에 가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비해 연 소득 10만 달러~2만 4,999달러 저소득자 중 HAS를 사용한 납세자는 4% 미만인 것으로 조사됐다.

■보험료보다 건강 상태 고려해야

건강 보험 플랜을 선택할 때 월 보험료만 보지 말고 개인적 건강 상태와 재정 상황 등을 적절히 고려해야 한다. 특별한 건강상의 문제가 없고 정기 예방 검진 등이 필요한 경우 고액 디덕터블 프랜 가입이 권장되지만, 다른 플랜에 보장 범위가 제한적인 점을 감안해야 한다.

보험 전문가들은 건강 상태가 양호하더라도 만약의 경우 고액 디덕터블을 부담할 수 있는 재정 능력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어떤 플랜을 선택하든, 네트워크에 포함된 의료진 정보 업데이트 여부를 확인하는 것도 중요하다. 의료진 정보가 제때 업데이트되지 않아 응급실이나 병원을 갑자기 찾아야 할 때 불편함을 겪는 경우가 자주 발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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