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평생 ‘평균’이라는 잣대가 인간을 졸졸 따라다닌다. 평균에 얼마나 근접한가, 또 평균을 얼마나 뛰어넘을 수 있는 가에 따라 인간은 평가를 당하며 살아간다. 학교에 다닐 때는 평균적인 학생의 성적과 비교돼 등수와 등급이 매겨지고, 대학에 지원하면 등급과 시험 성적이 지원자 평균치와 비교 당한다.
취업이 되고 나서도 연례 평가로 해당 직원 평균치와 대비되 또다시 비교 당한다. 평균주의자들은 대체로 입학, 취직, 결혼의 통계를 사회적 현상에 대한 균일성의 증거로 내놓고 있다. 우리는 퍼센트의 정도에 따라 고생길이냐 성공행이냐가 갈린다.
운명이 개인적으로 정해지기보다는 통계적 그룹의 일원으로서 배당되는 것이다. 우리가 이것을 묵인할 경우 이 미신은 장차 인류가 지금껏 겪어보지 못한 최악의 파멸을 불러올지도 모른다. (토드 로즈의 ‘The End of Everage' 중에서)
맥도날드는 정교한 ‘평균화(平均化)’ 전략으로 세계 패스트푸드 시장을 지배하고 있다. 맥도날드의 빅맥은 세계 어디를 가든 동일하다. 평균화 된 크기, 평균화 된 맛과 가격, 평균화 된 매장 분위기, 평균화 된 직원 매뉴얼이 인스턴트의 편리를 추구하는 현대인의 심리를 파고들어 중독 시킨다.
1981년 한국에 첫 맥도날드 매장을 오픈할 때 생긴 일이다. 프렌치 프라이의 원료인 아이다호 감자의 수입을 한국 정부가 허락하지 않으므로 제품 균등성의 문제가 발생했다.
미국 본사는 연인원 600여 명에 달하는 영양사, 조리사, 화학 전문가를 한국에 급파했다. 7년이 지난 후에야 연구진은 복합비료의 사용을 조절하므로 미국산 감자와 동일한 품질을 한국에서 생산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밀도 높은 상품 균등성을 만들어 내려는 맥도날드 본사의 관료적 정책으로 말미암아 국가 간의 통상, 외교문제가 야기되었다. 기업 간에는 상호 불신 문제를 일으켰다. 맥도날드의 경직된 균등화 정책은 인간에게 까지 기계적 통제를 강제하는 비인격성을 만들어 내었다.
우연의 일치일까. 독일 나치가 자행한 홀로코스트 논리 안에는 기계적인 평균화를 추구하는 ‘맥도날드화(McDonaldization)’와 비슷한 개념이 들어있다. ‘현대성과 홀로코스트’의 저자 지그문트 바우만(Zygmunt Bauman)은 말했다. “600만 명에 달하는 유대인들은 그들 중 누가 무엇을 했기 때문에 죽지 않았다. 단지 그들이 유대인이라는 범주화된 평균주의 정책의 결과로 어처구니없는 집단 학살을 당했다.”
당신은 리더인가. 범주화를 추구하는 평균주의의 허상에 속지 말라. 그대만이 성취할 수 있는 창의적 인간상을 꿈꾸라. 관성의 궤도를 벗어나 도약하라. 진리를 붙잡은 자유인이 되라. 예수는 말씀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그대의 삶 위에 뜨거운 사랑과 정체성을 부어주시는 예수와 동행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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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만/목사·AG 뉴욕신학대학(원)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