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반도체 선구자 강기동 박사 특강
▶ 포토맥 포럼서 미·소 핵개발 경쟁 등 비사 소개
한국반도체의 선구자 강기동 박사가 반도체 개발 비사를 이야기하고 있다.
한국반도체의 선구자인 강기동 박사(90) 초청 특강이 지난 10일 애난데일에서 포토맥 포럼(회장 이영묵) 주최로 열렸다.
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이날 특강은 유튜브 채널인 ‘디씨멘터리’가 강 박사에 대해 올린 ‘미국과 러시아 간 제3차 세계대전을 막은 한국인’이라는 제목의 동영상 상영을 시작으로 강 박사의 학창 시절과 미국에서의 반도체 연구, 1960년대 미국과 소련간 핵탄두 개발 경쟁과 냉전시기 미니트맨-2 대륙간 탄도미사일 개발 참여 비사 등이 소개됐다.
강 박사는 “미니트맨-2 개발 당시 이 미사일에는 반도체가 아닌 진공관 탑재방식으로 발사 후 금방 폭발하는 문제점이 있었고 크기도 매우 크고 중량도 무거워 사거리도 멀리 가지 못했다”며 “이 때문에 소련은 미국과 가장 가까운 쿠바에 미사일을 갖다 놓으려 했고 미국은 소련과 거리상 가장 가까운 알래스카에 미사일 기지를 건설했다”고 말했다.
그는 “미니트맨 미사일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 자체가 1급 보안이었고 따라서 내가 미니트맨에 진공관 대신 들어갈 반도체를 개발한다는 것도 기밀이었다”며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대가로 7년 동안 논문 발표는 물론 모든 활동에 제약받았고 내 이름도 정부 문서에 이름이 아닌 코드로 기록돼 없는 사람 취급을 받았다. 미국에서 노출되지 않도록 숨어 살아왔다”고 말했다.
강 박사는 “세상은 평범한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런 세상이 아닌, 마치 수박과 같이 겉과 속이 전혀 다르다”며 “이런 이야기를 해도 믿을 사람이 별로 없다. 최근에는 중국 공안이 따라 다니는 것 같아 내 이름으로 된 신용카드와 셀폰도 쓰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 밖에 강 박사는 어린 시절인 해방 직후 공산당 박헌영에 의해 가정이 풍비박산된 이야기, 학창 시절 진공라디오에 거의 미쳐 있던 열정적인 시기, 한국 아마추어 무선연맹(KARL) 창립, 한국전 정전 직후 방첩대에 거물 간첩 혐의로 끌려 들어갔다가 오히려 통신 분야에 도움준 비사 등을 짧게 소개했다.
한편 1934년생으로 함흥에서 태어난 강 박사는 경기고, 서울대학교 전기공학과를 나온 후 1958년 오하이오주립대 반도체연구소에서 본격적으로 반도체 연구에 뛰어들었고 연구 성과를 인정받으며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1962년 애리조나주 피닉스에 위치한 모토로라에 입사, 반도체 연구소를 직접 꾸리고 최첨단 반도체 생산 기술을 연구해 당시의 반도체 분야를 선도했다.
1973년 경기도 부천에 ‘한국반도체주식회사’를 설립하고 전자 손목시계용 시계칩 KS-5001을 개발, 국내 반도체 산업의 수준을 끌어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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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