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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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생각] 심각하지 말아요

2024-10-09 (수) 신석환/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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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살면서 정말 많은 긴장 속에 살아간다. 아침에 눈을 뜨면서부터 밤에 눈감고 잘 때까지, 심지어는 잠을 자는 동안에도 긴장을 풀지 못하는 게 현대인이라고 말한다. 어떤 분은 아침에 잠이 깨면 어금니가 그렇게 아플 수가 없다고 말한다. 그 까닭은 잠자는 동안 이를 악물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주변에는 진지하고 심각한 인간들이 많았다. 그러나 이 시대는 그런 부류를 선호하지 않는다. 실상은 별 위인도 아니데 인상을 쓰고 옆구리에는 보지도 못하는 타임지를 끼고 있거나 사상계니 현대문학 같은 책을 들고 다니며 “폼생폼사”했던 청춘도 많았다.

그러다가 조금씩 삶의 질이 향상 되면서 사람들이 변해갔다. 조금 늦은 감이 없지는 않지만 지금은 자주 웃으며 살기를 희망하는 분위기가 있어 다행이다.
요즘 적령기 남자 여자들은 신랑감이나 애인에게 요구하는 조건가운데 으뜸이 유머감각이다.


유머나 조크 한 방으로 순간의 긴장을 풀게 하고 큰 행동이 아닌 작은 행동으로 상대방의 마음을 녹게 하는 그런 순발력을 좋아한다. 신(神)도 인간에게 큰 걸 바라지 않는다. 유쾌하게 살고 서로 사랑하며 살라고 수도 없이 말씀하신다. 그러함에도 주제넘은 인간들이 어렵게 해석하고 장황하게 떠벌린다.

예전에는 정치가나 학자, 사업가가 남편감 1순위였다. 이제는 그런 직업에 큰 관심이 없다. 그런 직업이나 그런 부류의 인간들은 다 골치 아픈 사람으로 애 저녁에 낙인이 찍혔다.

이제는 그 자리에 개그맨, 가수, 스포츠맨, 탤런트 같은 직업군(群)이 차고 들어섰다. 꿈 많은 초중고 학생은 말할 것도 없고 장래 나라의 동량(棟梁)이 되겠다는 대학생들도 희망하는 직업과 인물이 연예인이다. 짧은 인생을 심각하게 살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나도 웃고 남도 웃기며 살겠다는 것이 이상이요 희망이 되었다.

그렇다면 걱정이 아닌가. “소는 누가 키운단 말인가” 탄식하는 국민도 없지는 않으리라. 그러나 그런 염려는 붙들어 매도 좋다. 언제 어디서나 쓸데없이 진지함을 가장한 인간들은 남아있기 마련이다.

저 여의도 쪽에서 낮밤을 가리지 않고 실익도 없이 싸워대는 그런 애국자들은 여전히 널려있기 때문이다. 전현무나 신동엽 유재석을 보라. 장도연이나 박나래를 보라. 그들 옷깃에 금배지가 달렸다면 참으로 슬픈 일이 아닌가.

우리 다 함께 마음을 넉넉하게, 인상 대신 미소를 담고 살아보자. 아무 즐거움도 없는 자리를 놓고 다투다가 결국은 피리 부는 사내를 따라가는 레밍 같은 인간들은 제발 자기들 끼리 잘 살라고 하자. 우리는 지는 석양이나 떨어지는 낙엽을 보고 가슴 아파하고 은퇴한 조선의 4번 타자 이대호가 여전히 최강야구에서 홈런을 칠 때 함께 함성을 지르는 흥분과 여유를 간직하자.

유머란 이런 삶의 윤활유일지 모른다. 우리 한국 사회가 언제나 경직되어 있는 이유도 조크가 없고 이해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이 유머러스하다는 것은 마음이 넉넉하다는 뜻일 터이고 다른 사람을 관용하는 또 다른 마음일 것이다. 어떤 외국인이 말했다. “한국에서 한일전 축구대회를 보면 그건 스포츠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정확한 촌평이다.


사랑을 주장하기만 하는 교회도 그렇고, 동창회도 동호회도 싸움만 하는 회의는 그만 하자. 얼마나 잘 싸우면 신문 방송에서 소개하고 비웃겠는가. 나는 늘 주문한다. “될 수 있는 대로 회의는 하지마라,” 우리 한국 사람은 유난히 회의를 잘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시인 바이런이 이런 말을 했다. “내가 그리스에 처음 들렸을 때 부둣가에서 무화과를 파는 한 노파의 작은 친절과 미소가 나로 하여금 평생 그리스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갖도록 만들었다.” 이해가 되는가. 이렇게 말하고 권하는 나 역시 협량(狹量)할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그런 면에서 이 글은 나 자신에게 주는 제안서다.

이상스레 나이가 더해지고 노년을 살면서 유머는 사라지고 쫀쫀해지는 스스로를 느낄 때가 많다. 유머대신 심술을 장착한 사람으로 변질 되어가는 듯하다. 하여 원래 인간을 사나운 동물이라고 선언한 선각자의 견해에 동의하며 내자가 부르는 소리에 그만 일어나야겠다.

<신석환/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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