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과 버터
2024-10-07 (월)
신경립 서울경제 논설위원
우크라이나와 전쟁을 3년째 벌이고 있는 러시아가 내년 국방비를 올해보다 25% 늘린 13조 5000억 루블(약 186조 원)로 책정했다. 내년 전체 예산의 32%를 차지한다. 국방과 안보 분야 지출 합계는 41조 5000억 루블(약 579조 원)로 전체 정부 지출의 40%에 달한다. 이는 연금, 의료, 교육, 기타 사회복지 지출보다도 많은 규모다. 이에 대해 베를린 카네기연구소 연구원인 알렉산드라 프로코펜코 전 러시아 중앙은행 간부는 뉴욕타임스(NYT)에 “우리는 버터보다 대포가 더 중요해지는 지점에 이르렀다”고 진단했다.
전시 상황의 정부에는 한정된 자원을 국방과 국민 생활에 어떻게 할당할지가 중대한 고민거리다. 경제학에서는 국가 자원 배분의 원리를 이른바 ‘총과 버터’의 비유로 설명하곤 한다. 경제학의 대가 폴 새뮤얼슨이 1948년 저서 ‘경제학’에서 처음으로 체계화한 ‘총과 버터’ 개념의 유래는 1차 세계대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1916년 당시 참전을 준비하던 미국이 농업용 비료의 주성분이자 화약 제조에 필수인 질산염을 자체 생산하기로 하면서 ‘평화 시에는 비료용, 전시에는 군수용’으로 공장을 가동하기로 결정한 것이 ‘총과 버터’에 비유됐다. 2차 세계대전 때 나치 독일의 선전장관 괴벨스는 “우리는 버터 없이는 살 수 있어도 무기 없이는 살 수 없다”는 말로 군국주의를 선동하기도 했다.
1일 건군 76주년을 기념하는 국군의날 행사에 ‘괴물 미사일’로 불리는 현무-5 등 우리 군의 최첨단 전력이 집결했다. 정부 예산안에 따르면 내년 국방비는 올해보다 3.6% 늘어나 사상 첫 60조 원을 돌파할 예정이다. 한편으로 보건·복지·고용과 교육 예산도 각각 4.8%, 3.8% 늘어난 249조 원, 98조 5000억 원에 달한다. 국민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만큼이나 평화를 지키기 위해 힘을 키우는 일에도 소홀할 수 없는 것이 분단국인 우리의 현실이다. 한정된 자원으로 ‘총과 버터’를 모두 챙기려면 파이를 키우는 경제 살리기와 재정 효율화가 시급하다.
<신경립 서울경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