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작은 사이즈 없나요?’…의류 매장에서 사라지는 빅 사이즈

2024-09-23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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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만치료제가 몰고 올 소비
▶비만치료제가 몰고 올 소비

▶ 사용자 늘면 식품지출 줄 전망
▶의류·식품 업계 발 빠른 대처

‘작은 사이즈 없나요?’…의류 매장에서 사라지는 빅 사이즈

신형 비만 치료제 열풍으로 소비자들의 지출 행태에 변화가 올 전망이다. 이미 작은 사이즈 의류에 대한 수요가 늘고 있고 식품점 업계는 고단백질 위주 건강식품 수요 증가에 대비하고 있다. [로이터]

GLP-1 계열 비만 치료제 열풍이 소비 시장에 대대적인 변화를 몰고 올 전망이다. 최근 없어서 못 팔 정도로 수요가 폭등한 비만 치료제가 상용화할 경우 가장 먼저 의류 업계와 식품 업계에 큰 변화가 예상된다. 다이어트에 성공한 사람이 늘면 의류 매장 진열대에서 빅 사이즈를 찾아보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수퍼마켓에서는 스낵 등 이른바 정크 푸드 코너를 저칼로리 위주 건강식품이 대신할 전망이다. 의류 업계는 이미 이 같은 새 트렌드에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으며 식품 업계 역시 비만 치료제가 몰고 올 변화를 예의 주시 중이다.

사라지는 XXL, XL 사이즈

아만다 하트만은 이제 타이트한 옷만 구입한다. 새라 로웬탈은 정크 푸드 지출을 줄였다. 케이트 핸들러는 얼마 전 처음으로 빅 사이즈가 아닌 일반 사이즈 청바지를 구입했다. 최근 소비 습관을 바꾼 3명의 여성에게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모두 위고비, 오젬픽, 젭바운드와 같은 신형 비만 치료제 사용으로 날씬한 몸매를 가꾸는 데 성공했다. 이들 비만 치료제의 폭발적인 인기의 영향으로 소매 업계는 소비 습관에 큰 변화가 나타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의료정책 전문 비영리 단체 KFF의 5월 조사에 따르면 미국 성인 8명 중 1명은 GLP-1 계열 비만 치료제 사용 경험이 있다. 약 6%(1,500만 명)에 해당하는 성인은 처방전을 보유하고 있어 마음만 먹으면 비만 치료제 구입이 가능하다. 오젬픽의 경우 원래 당뇨 치료제로 개발된 약품이지만 약 40% 사용자는 체중 조절 목적으로 사용한다고 답했다. JP모건 리서치에 따르면 비만 치료제 시장 규모가 2030년까지 3,000만 명에게 약품을 제공할 수 있는, 약 1,000억 달러로 성장할 것으로 예측했다.

비만 치료제 사용이 증가로 미국인 날씬해지면 집안 옷장과 주방 선반의 모습에도 획기적인 변화가 예상된다. 이 같은 현상은 아직 초기 단계지만 이미 다양한 부문의 업계가 날씬해질 미국에 대비하고 있다. 가장 발 빠르게 움직인 부문은 고급 의류 업계다. 현재까지 비만 치료가 고가인 점을 고려하면 부유층의 의류 구매 형태에 가장 먼저 변화가 나타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부유층이 많이 사는 뉴욕 어퍼사이드 이스트 지역은 비만 치료제 처방 비율도 높다. 시장조사기관 임팩트 애널리틱스에 따르면 2022년 이 지역 여성 의류 스몰 사이즈 판매량은 이미 5% 증가한 것으로 조사됐다. 2022년과 올해 플래그십 스토어가 집중된 매디슨 애비뉴 의류 매장을 대상으로 실시된 조사에서는 여성 버튼 업 스타일 긴팔 셔츠 사이즈가 작아지는 트렌드가 나타났다. 이 기간 XXS, XS, S 등 슬림 사이즈 판매가 12%나 증가한 반면 L, XL, XXL 등 이른바 빅사이즈 판매는 약 11%나 줄었다. 남성 의류 역시 작은 사이즈 판매량이 증가했지만, 여성 의류만큼 두드러지지는 않았다.

■패션 업계, 빅 사이즈 모델 기용 줄여

뉴욕 아미티빌에 거주하는 케이트 핸들러(50) 비만 치료제 젭바운드로 무려 50파운드 감량에 성공했다. 평생 비만으로 살아온 그녀는 살을 빼기 전까지 그저 몸에 맞고 편안한 옷이면 스타일과 상관없이 지갑을 열었다. 그런데 최근 몰을 찾은 그녀는 전에는 감히 들어갈 생각도 못 했던 일반 의류 매장에 들어가 청바지 코너를 둘러봤다. 이번에는 둘러보는 것에만 그치지 않고 점원에게 과감히 입어봐도 되느냐고 물었다. 전 같으면 이상한 눈으로 쳐다봤을 점원이 이번에는 친절하게 탈의실로 안내했다. ‘일반 사이즈 의류를 당당하게 살 수 있다고?’ 핸들러는 평생 처음 느껴 본 벅찬 감정을 생생하게 전했다.

비만 치료제가 가져온 의류 다이어트 현상에 고급 의류 시장에서는 이미 빅 사이즈가 사라지는 추세다. ‘보그 비즈니스 2025 봄/여름 남성복 사이즈 포용성 보고서’(Vogue Business Spring/Summer 2025 menswear size inclusivity report)에 따르면 이번 시즌 패션쇼에 선보인 65개 의류 브랜드 중 3개 브랜드만 ‘빅 사이즈’ 모델 1명을 무대에 올렸다. 지난 시즌 69개 브랜드 중 8개 브랜드가 빅 사이즈 모델을 기용한 것에 비하면 크게 줄어든 것이다. 중저가 의류 브랜드인 올드네이비와 로프트도 이미 몇 년 전부터 매장에서 빅 사이즈 비중을 줄이고 있다.

■식품 구입 줄고 건강식으로 대체


비만 치료제 사용 후 체중 감량에 성공한 새라 로웬탈(29)은 요즘 빅 사이즈 의류로 가득 찬 옷장을 일반 사이즈 의류로 바꾸는 재미에 푹 빠졌다. 그녀의 소비 습관 변화는 의류뿐만 아니라 식품 구입에까지 나타나고 있다. 불과 1년 전, 오젬픽을 사용하기 전에만 해도 집 안에 있는 스낵은 며칠 가지 못했고 그때마다 부족한 스낵을 채우기 위해 수퍼마켓을 찾는 일상이 반복됐다. 그런데 비만 치료제 사용 후 스낵과 음식에 대한 집착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먹은 일에 더 이상 끌려다니지 않게 됐다”라는 로웬탈은 “내 몸에 들어가는 것으로 조절하는 데 자신감이 생겼다”라고 비만 치료제 사용 후 변화를 설명했다.

JP 모건 리서치의 조사에 따르면 2022년 11월과 2023년 비만 치료제 사용자가 식료품(스낵, 소프트 드링크, 고탄수화물 식품)구입에 비만 치료제를 사용하지 않은 소비자보다 약 8% 적게 지출했다. 신형 비만 치료제는 포만감을 지속시키는 방식으로 음식 섭취량을 줄이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비만 치료제 사용자 중 일부는 충동 섭취를 통제해 정크 푸드에 대한 욕구를 억제하는 데 도움을 받는 것으로도 보고됐다.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된 보고서에 따르면 대표적인 가공식품 제조업체 제너럴 밀스와 코나그라의 2023~2024년 미국 내 스낵 판매량은 감소했다. 인기 스낵 브랜드 도리토와 레이스를 판매하는 펩시콜라 프리토레이 부문의 최근 분기 매출 역시 소폭 감소한 것으로 보고됐다.

위고비 사용으로 50파운드를 감량한 아만다 하트만(25)은 여전히 정크 푸드를 사다 놓지만, 이제는 주의해서 먹는 편이다. 전에 같았으면 아이스크림 한 통을 앉은 자리에서 다 먹어 치웠으나 이제는 2주에 몇 숟가락씩만 먹는다고 한다. 다만 비만 치료제가 근육량을 감소하는 부작용이 있기 때문에 하트만과 같은 소비자는 고단백 위주 건강한 식단으로 대체하는 소비 습관을 보이고 있다. 텍사스 A&M 대학에서 식료품 소비 행위를 연구하는 사이먼 소모기 교수는 낮은 이윤의 비건강식품을 대량 판매하는 식료품점이 대다수다. 체중 감량에 성공한 소비자들의 식료품 구입 행태에 변화가 나타나면 식료품점 진열대 모습도 바뀔 것이란 전망이다.

소모기 교수는 계산대 옆 달콤한 스낵 진열대가 사라지고 과자와 아이스크림 코너는 채소와 단백질 위주 식품으로 대체될 수 있다고 예측했다. 소모기 교수에 따르면 고칼리로 가공식품 제조업체는 이미 슈퍼마켓 주요 진열대 위치를 유지할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린 퀴진이나 헬시 초이스와 같은 다이어트 식품 제조업체들은 이미 이 같은 트렌드를 선점하기 위해 공격적인 경쟁을 시작했다.

소모기 교수는 비만 치료제 열풍 트렌드를 활용한 식료품점과 짐 파트너십, 비만 치료제 쇼핑객을 위한 로열티 프로그램, 고단백질 식료품 출시 등의 마케팅이 선보일 것으로 내다봤다. 다이어트 서비스 업체 ‘웨이트와처스’(Weight Watchers)는 지난 12월에 비만 치료제 복용자를 위한 새 프로그램을 출시했습니다. 세계 최대 식음료 회사 네슬레도 소비자 체중 감소를 지원하는 신제품을 출시했다. 네슬레 대변인은 비만 치료제의 등장을 위협이 아니라 새로운 시장으로 진출할 기회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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