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재일동포에 대한 차별을 신랄하게 비판한 사실극

2024-09-13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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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사형’(Death by Hanging·1968) ★★★★½ (5개 만점)

재일동포에 대한 차별을 신랄하게 비판한 사실극

재일 동포 살인범 고교생 R이 교수형 집행을 기다리고 있다.

차별 받는 재일 한국인에 대해 연민하고 유난히 관심이 컸던 일본 감독 나기사 오시마가 1958년 실제로 일본에서 일어났던 한국인 고교생 이진우의 일본 여고생 강간 살인사건을 다룬 영화로 이진우는 재판 끝에 유죄선고를 받고 교수형(일본어 제목은 교사형)에 처해졌다. 사형을 전쟁행위로 간주하면서 이의 폐지와 함께 일본 관료체제의 희극성 그리고 재일동포에 대한 부당대우와 차별을 신랄하게 비판한 진지한 드라마이자 황당무계한 블랙코미디로 마치 연극과 기록영화를 섞어놓은 듯한 흑백영화다.

내레이션으로 일본 법무성에 의하면 조사 대상자중 71%가 사형제 폐지를 반대한다는 설명으로 시작된다. 이어 재일동포 사형수 R(윤융도)이 수감된 교도소의 안팎이 자세히 설명되고 카메라가 사형장 안으로 들어가면서 R의 사형집행 전의 마지막 절차와 교수장비를 보여준 뒤 참관인들이 보는 가운데 사형이 집행된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R이 의식은 잃었으나 그의 심장은 여전히 뛰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아연실색한 참관인들인 교도소장, 가톨릭 신부, 검사와 의사 등이 R에 대한 처리를 놓고 갑론을박에 들어간다. R을 소생시켜 사형을 재 집행 할 것인가, 한번 죽인 사람을 어떻게 다시 죽일 수 있는가, R의 영혼은 이미 그를 떠났으니 영혼 없는 자를 어떻게 죽일 수가 있는가를 놓고 법석들을 떨어댄다. 그리고 이들은 이 과정에서 자신들이 R의 범행을 재연하면서 광대극을 연출한다.


이어 이들은 R을 소생시킨 뒤 마치 딴 세상에서 온 사람같이 목석같은 표정을 한 R에게 그의 기억을 소생시키기 위해 범행사실을 얘기하는데 이 과정에서 참관자들이 R과 함께 배우가 돼 R의 불우한 가정환경을 가설극장 연극식으로 보여준다. ‘조센징’이라는 말이 계속해 나오면서 재일동포와 힌국인의 생활습관과 태도 및 유교사상까지 닥치는 대로 조롱받는데 이런 희극 속에 영적, 정치적, 종교적 및 의학적 논제들이 토론된다.

느닷없이 흰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여자(고야마 아키코)가 나타나 R의 누나라며 일본의 재일동포에 대한 부당대우에 맹공을 가한다. 그런데 실제로 R에겐 누나가 없는데 그럼 이 여자는 누구인가. R이 살해한 여고생인가 또는 일본에 의해 핍박받는 한민족인 재일동포의 대변자인가. 여기서 오시마는 유치환의 시를 읊고 그가 1960년대 한국 방문시 찍은 판자촌의 더럽고 가난한 아이들의 사진을 보여주면서 500여년에 걸친 조선의 역사와 함께 36년간의 일제의 한국점령 그리고 일한관계와 남북한 통일문제까지 거론하고 있다.

이어 술 파티가 벌어지고 참관자들은 큰 일장기를 덮고 누운 R과 그의 누나를 둘러싸고 앉아 주정을 겸한 대화를 나누면서 사형제 폐지와 일본의 제국주의적 근성 그리고 재일동포에 대한 차별 등이 얘기된다. 그런데 R은 왜 안 죽었을까. R은 갖은 핍박과 간난과 역경 속에서도 결코 멸하지 않는 한국인의 정신을 상징하고 있는 것일까. 보통 영화의 형식을 파괴한 아방가르드 식의 영화로 지와 감성을 모두 강력히 요구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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