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서 변치않는 진리가 있다면 그건 우리 모두가 언젠가는 노인이 되고 언젠가는 죽는다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처음으로 맞닥뜨리며 가야하는 생의 그 시간들을 생각하면 두려워진다. 육체는 자꾸 쇠약해가고 정신 또한 흐려져가는 삶의 마지막 단계를 어떻게 보낼 것인가.
가깝게 지내던 장로님이 소천하셨다. 스스럼없이 만나 식사하고 가끔씩 전화를 드리면 그 분 고유의 웃음띤 음색으로 무척 반가와하던 음성이 마음에 울려오곤 했는데 이젠 어떻게 연락을 해야하나… 마침 생신이어서 축하전화하고 가족들이 모인 시간을 피해 며칠 후 좋아하시는 장미꽃 한다발을 들고 찾아 뵈었을 때 누웠던 침대에서 지팡이를 짚고 나오시며 “우리 또 식사하러 갑시다” 하며 해맑은 웃음을 지으셨는데… 그게 마지막이 될 줄이야.
한평생 기독교 복음을 위해 헌신하셨던 장로님은 처음으로 미주한인 기독교방송국을 설립했고, 한국 TV방송역사의 산증인이셨던 방송인이다. 노년이 되어도 인간의 고귀함과 자존심을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호기심을 보이고 주변의 일에 관심을 갖고 나이에 상관없이 좋은 친구를 만나 유대관계를 돈독히하고 어려운 이웃을 보면 마음이 아파 선뜻 지갑을 열고 돌보며 하나님 사랑을 실천하시던 분이다.
장로님은 모든 걸 하늘의 뜻에 맡기며 바람도 불지않고 비도 더이상 흔들어 깨우지 못하는 마지막 고비를 훌쩍 넘어가셨다. 하나의 별이 성호를 그으며 지나가고 영혼은 이미 천국에서 깨어나 주님과 함께 영원히 지내고 계시리라 믿는다. 아픔과 슬픔, 그리움, 아쉬움 다 내려놓고 가신 장로님께 하나님을 향한 감사의 기도만이 내가 할 수 있는 마지막 선물이 되었다.
하루의 시간을 잘 보내고 나면 만족감과 행복이 감돌고 마음이 따스해짐을 느낀다. 이런 하루가 쌓여서 일년이 되고 우리의 삶이 된다. 삶의 마지막 순간에 “그래도 이 정도면 됐다, 아름다웠다” 고 말할 수 있는 인생이 되었으면 한다.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을 끝냈다는 천상병 시인의 ‘귀천’의 시가 훗날 내 삶에도 헌시가 될 수 있길 바란다.
우리는 인생을 바로 사는 지혜와 태연하게 죽을 수 있는 준비를 해야한다. 프랑스의 유명한 사상가 장 자크 루소는 “철학자처럼 사색하고 농부처럼 일하여라. 이것이 가장 바람직한 인간상이다” 라고 했다.
하이데거는 죽음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나자신의 죽음이기 때문에 죽음 앞에서는 진지해지고 심각해질 수밖에 없음을 지적했다. 아무도 죽음을 대신해 줄 수 없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는 “죽음은 인간이 받을 수 있는 축복중 최고의 축복이다”라고 했다.
붉은 태양이 서편 하늘 어디론가 완전히 빠져나가기 바로 직전, 세상은 가장 밝다. 그리고 그 밝은 빛줄기 바로 밑이 가장 어두운 그림자를 만들어 새까만 어둠이 밀려오게 되는데 거기서 난 삶과 죽음을 생각한다.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는 어떻게 살 것인가와 직결이 된다.
살 날이 줄어들수록 대부분 우리는 마음이 강팍해지고 감정도 닳아져 무디어간다. 나이를 더할수록 격정(激情)은 수그러들고 열정은 희석되고 애정은 시들해진다.
폭풍, 홍수, 가뭄을 거쳐야 껍데기 속의 영혼이 깨어나서 알맹이가 여무는 것처럼, 노년의 삶이 힘들고 외로움이 있을 때라도 절망하거나 원망하지 말고 그걸 이겨내는 지혜가 필요하다. 지혜롭고 현명한 사람은 늘 웃음을 잃지않고 소망을 갖는다.
더 잘 웃고 더 많이 웃는 것이 잘 사는 방법이다. 후회없는 죽음을 맞이 하기 위해서는 일상생활에서 소소한 행복을 발견 하고 가능하면 재미있고 유익한 일을 하는 등 자신만의 행복기준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 죽음에 대한 태도는 삶에 대한 태도를 결정짓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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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수잔 워싱턴 두란노문학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