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급망 틀어쥔 중국…글로벌 칩 생산 차질 우려
2024-08-29 (목)
서울경제=김경미 기자
▶ 갈륨·게르마늄 수출 제한 1년
▶ 가격 두배까지 급등·재고도 바닥
▶첨단 반도체 등 수요는 계속 늘어
▶미중 갈등 빌미로 전략금속 비축
▶긴장 지속 땐 공급 대란 장기화
갈륨과 게르마늄 등 반도체 핵심 소재에 대한 중국의 수출제한이 1년을 넘은 가운데 유럽 및 미국의 공급난이 가시화하고 있다. 수요 대비 부족한 공급 탓에 가격이 오르는 것은 물론 서방 기업들이 비축해둔 재고도 바닥을 보이며 첨단 칩 및 군용 광학 하드웨어 등의 생산 차질 우려가 커지고 있다.
26일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중국이 지난해 8월 1일 희귀 금속이자 첨단 반도체 및 전자제품 핵심 소재인 갈륨과 게르마늄의 수출을 제한하면서 지난 1년간 미국·유럽에서 해당 광물의 가격이 두 배가량 치솟았다. 당시 중국 상무부는 갈륨과 게르마늄을 ‘국가 안보’를 위한 수출통제 대상에 포함하면서 이들 금속을 수출하려면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 것은 물론 해외 구매자와 용도에 대해 상세히 보고하도록 했다.
세계 최대 갈륨·게르마늄 생산국인 중국의 수출통제로 공급은 제한된 반면 첨단 칩 개발 경쟁으로 수요는 꾸준히 늘고 있어서다. 아일랜드 투자사 스트래티지메탈인베스트에 따르면 미국·유럽 시장에서 갈륨의 소매가격은 ㎏당 909.3달러(23일 기준)로 수출통제 이전인 지난해 6월의 430달러와 비교해 110%가량 급등했다. 게르마늄의 소매가 역시 ㎏당 3680.8달러까지 올라 수출통제 이전 가격에 비해 50% 이상 올랐다. 미국 지질조사국(USGS) 등에 따르면 중국은 전 세계 갈륨 공급량의 98%를, 게르마늄은 60%를 생산하고 있다.
핵심 소재 부족으로 산업 현장은 생산 차질을 빚고 있다. 독일 무역 업체 트라디움의 금속 담당 매니저 얀 기세는 “중국의 새로운 수출 허가 프로그램을 통해 확보한 갈륨과 게르마늄은 과거 구매했던 물량의 일부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캐나다의 한 트레이더도 “중국은 이제 해외에 게르마늄을 제공하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또 다른 반도체 소재 구입처 관계자는 “중국이 올 상반기처럼 갈륨 수출을 줄일 경우 조만간 비축량이 소진돼 부족 사태가 벌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중국 세관에 따르면 올 상반기 갈륨·게르마늄 수출량은 각각 1만 2410㎏, 2만 ㎏으로 과거 평균치인 2만 ㎏, 4만 ㎏의 절반 수준으로 뚝 떨어졌다.
세계 각국이 첨단기술 경쟁에 돌입하면서 수요가 급증한 것도 공급난을 부추기는 요인이다. 두 금속은 통신·군사장비용 반도체 등에 쓰이는 전략 금속이다. 특히 갈륨비소화합물은 실리콘보다 열과 습기에 강하고 전도성이 높아 고성능 반도체 소재로 각광받고 있다. 게르마늄은 태양전지와 광섬유 케이블, 열화상 카메라 제조 등에 사용돼 2030년까지 수요가 공급보다 6~9배 더 많을 것으로 관측된다. 독일 프라운호퍼연구소는 광섬유 분야에서만 게르마늄 수요가 지금보다 8배 늘 것으로 내다봤다.
중국이 미국과의 갈등을 빌미로 전략 금속을 비축 중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스트래티지메탈인베스트는 “중국 화웨이의 경우 갈륨 관련 2000개 이상의 특허를 확보하는 등 갈륨 집적 반도체 분야에서 지배적 입지를 구축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고 짚었다. 베이징에 본사를 둔 컨설팅 업체 트리비움차이나의 코리 콤스 역시 중국이 반도체와 재생에너지 등의 산업 발전을 위해 수출 규제를 부분적으로 활용하고 있다며 “세계 정세와 미중 관계가 이대로 유지된다고 가정한다면 중국이 수출 규제를 완화할 동기가 보이지 않는다”고 분석했다.
한편 중국 당국은 갈륨·게르마늄을 넘어 지난해 말부터 전기차 배터리 음극재에 쓰이는 흑연과 희토류 가공 기술에 대해서도 수출을 막았다. 다음 달 15일부터는 배터리·핵무기·야간투시경 등의 원료로 쓰이는 준금속 안티몬에 대한 수출도 통제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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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경제=김경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