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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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벅스를 주문하며

2024-08-22 (목) 로리 정 갤럭시 부동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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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딸 다섯 중에 (선도 안보고 시집가는) 셋째 딸로 태어났다. 6.25 때 이북에서 피난 나온 아버지와 할머니, 엄마, 총 8명의 가족이 함께 살았다. 아버지는 청소년기에 피난을 내려왔으니 딱히 정규교육을 받기는 어려웠고, 자영업으로 우리 가족의 생계를 꾸려갔다.

물론 할머니가 계셔서 집에는 항상 연시감과 미숫가루, 식혜, 수정과는 끊어지지 않았고, 아버지는 시장에 다녀오실 때마다 할머니가 드실 과일을 사오셨다. 할머니 덕분에 우리들도 덩달아 먹는 것은 부족함이 없었다. 할머니 방에 가면 맛난 것들이 그득했으니 말이다.

새 학년이 시작하는 매년 3월이면 자식 다섯이 모두 한꺼번에 손을 내밀었다. 육성회비, 공책, 전과 등 분기별로 들어가는 돈은 엄청났다. 돌이켜보면, 아버지는 방 한 구석에서 작은 탁자 위에 우리들이 이전 해에 쓰다 버린 공책에 큰 글씨로 앞으로 들어갈 학비를 계산하곤 했다. 자식들은 아랑곳 하지 않고 수시로 돈을 달라 손을 내밀었고, 아버지는 큰 잔소리 없이 자식들이 원하는 돈을 내 주셨다.


지금도 기억나는 일화는 눈이 많이 내린 날의 이야기다. 아버지는 당시 지로용지(고지서)를 들고 마감일이라며, 자전거를 타고 한 시간 거리의 농협에 가서 돈을 냈다. 그 날까지 납부하지 않으면 추가로 부과되는 연체료는 1,126원. 그 돈을 아낀다고 눈 길 왕복 2시간을 자전거로 다녀오신 거다.

그런 아버지의 유전인자를 받은 것인지 아니면 자랄 때의 환경 탓인지, 우리 딸 다섯은 모두 비교적 절약하는 것이 몸에 배어있다. 내 딴에는 꽤 비싸다고 생각되는 스타벅스 커피는 나를 위해서 마시는 것보다 손님을 만날 때 마시는 접대용이다. 소위 먹으면 똥 되는 커피이기도 하고, 이제는 늙어서 마시면 잠도 잘 안 오는 커피를 마시는 일은 점점 드물어진다.

반면에 내 자식들은 주문한 커피가 본인이 예상했던 맛이 아니라며 버리기도 한다. “나 때는 말이야”라던가 “먹는 음식을 버리면 안 된다”라고 말하는 것은 그야말로 구태다. 세상을 살아가는 것에 정답은 없다. 각자 본인의 신념과 철학대로 살아간다.
내가 좋아하는 커피는 한 잔에 6.84달러. 비가 오는 오늘, 나는 그 비싼 커피를 주문했다. 그리고 마지막 남은 한 방울까지 탈탈 털어 마시고 있다. 문의 (703)625-9909

<로리 정 갤럭시 부동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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