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베이비붐 세대에게 ‘시카고 1968 ~’ 하면 대개 무슨 말인지 안다. 지금 중장년인 그들에게는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최루탄 연기 자욱한 거리에서 장발의 젊은이들이 격렬하게 데모를 하고, 경찰은 무자비하게 곤봉을 휘두르며 이들을 때려잡고 …. 우리에게 ‘4.19’ ‘1980 광주’ ‘1987’ …하면 바로 이해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미국에서 대선후보 지명 전당대회 역사를 이야기할 때 재앙의 전형처럼 떠오르는 게 1968년 시카고 민주당 전당대회이다. 1968년 이전까지 시카고는 전당대회 단골 도시였다. 민주당은 9번, 공화당은 14번 시카고에서 전당대회를 열었다. 대륙 중앙에 위치해 교통이 편하고 컨벤션 시설들을 잘 갖췄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1996년 민주당이 전당대회를 열기까지 거의 30년 간 시카고는 전당대회를 유치하지 못했다. 1968년의 악몽 때문이었다.
1968년은 베트남전 참전을 둘러싼 찬반대립이 극에 달했던 때였다. 그해 4월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암살당하고, 6월 로버트 케네디 민주당 대선 경선후보가 암살당한 것이 이런 극단적 분열과 무관하지 않다.
마침 당시는 TV 생중계가 막 활성화된 시점이었다. 시카고 거리에서 젊은이들이 피 흘리며 잡혀가는 장면이 전국으로 생생하게 전달되면서 여론은 걷잡을 수 없이 갈라졌다. 한편에서는 “경찰이 저럴 수 있느냐”며 분노하고, 다른 편에서는 “학생들이 공부는 안하고 ~ 맞아 싸다”며 혀를 찼다. 정반대의 입장은 가족 간 불화, 전당대회 대의원들 간 갈등, 정치인들 사이의 대립을 쏟아냈다. 시카고 전당대회는 정치적 대참사였다.
2024 민주당 전당대회가 시카고에서 개막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의 고령 리스크로 속을 끓이던 민주당은 바이든이 카말라 해리스 부통령에게 바통을 넘겨주면서 활기에 차있다. 게다가 시카고는 인기 높은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 전현직 대통령 등 민주당 핵심인사들이 총 출동해 지지층 결집을 최대한 끌어올릴 계획이다.
그런 한편으로 ‘시카고 전당대회’ 하면 따라붙는 먹구름의 조짐이 없지 않다. 바이든 행정부의 친 이스라엘 정책을 비판하는 활동가 및 단체들이 전국에서 모여들었다. 팔레스타인에 동정적인 이들은 미국정부의 이스라엘 지원 중단 그리고 가자지구 내 대학살 종식을 촉구하고 있다. 이미 여럿이 체포되었고 시위가 격화될 경우 물리적 충돌 가능성이 없지 않다.
다행히 2024년은 1968년과 많이 다르다. 우선 전쟁을 보는 미국인들의 정서에 차이가 있다. 베트남 전쟁은 미국인들에게 남의 일이 아니었다. 미국정부가 1965년 파병을 시작, 1968년에는 거의 50만 젊은이들이 베트남에 가있었다. 가족이, 친구가, 연인이 남의 나라에서 다치고 죽었다. 베트남에서 전사한 미국인은 5만 8,220명에 달한다.
반면 지금의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은 미국의 개입 정도가 다르다. 미국은 이스라엘에 군사적 외교적 지원을 하고 있지만 파병은 없다. 그 지역의 가족친지를 잃은 미국인들이 상당수이지만 팔레스타인 태생이나 유태인을 제외하면 대부분 미국인들에게 전쟁은 상대적으로 멀다.
둘째, 시카고가 바뀌었다. 1968년 경찰의 무력 진압을 주도한 것은 리처드 J. 데일리 당시 시장이었다. 시카고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데일리는 ‘법과 질서’를 내세우며 경찰과 주방위군을 동원, 시위대 강경진압을 명했다. 지금의 브랜든 존슨 시장은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 전쟁을 ‘대량 학살’로 규정한다. 경찰 문화 역시 과거와는 완전히 다르다.
갈등과 대립은 언제 어느 곳에서도 피할 수 없는 현실. 이번 민주당 전당대회가 큰 사고 없이 마무리되기를, 미국 역사상 첫 유색인종 여성대통령 탄생의 길이 열리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