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전망대> ‘지바고’와 한국의 의사들
2024-08-02 (금)
이정훈 기자
요사이 잠시 긴 휴식 기간을 가지면서 옛날 영화들을 보내면서 지내고 있다. 그중에는 러시아의 설원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영화 ‘닥터 지바고’도 있다. 1965년에 제작된 이 영화는 원작의 노벨상 수상이 말해 주듯 고귀한 영혼들의 사투라고나할까, 특히 주인공(지바고)의 가족이 기차에 몸을 싣고 유리아킨이라는 곳으로 탈출하는 장면은 압권이다. 피에 굶주린 군상들의 아우성이라고나할까, 자유를 찾아…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어둡고 긴 일그러진 영화 속의 모습은 요즘의 (한국)의료계의 현실을 말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내년이면 영화 ‘닥터 지바고’가 제작된지 환갑(60주년)을 맞는 해가 된다. 얼마전 인터넷을 뒤지다가 영화 ‘닥터 지바고’가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영화중 최상위를 다툰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었다. 이 영화는 ‘사운드 오브 뮤직’과 함께 1965년에 개봉됐고 ‘지바고’는 68년, ‘사운드 오브 뮤직’은 69년에 각각 한국에서 개봉됐다. 지바고는 이후 78년, 81 년 등 5차례나 한국에서 재 개봉되면서 ‘사운드 오브 뮤직’ 과 함께 특수를 누렸다. 두 영화는 각기 다른 요소와 내용들을 함축하고 있지만 전쟁, 혁명 등의 극한 상황 속에서 인간이란 얼마나 더욱 더 사랑과 행복을 열망하는 존재인가를 보여 주어 큰 공감을 샀다. 특히 닥터 지바고는 격변기 속에서 의사이자 시인이었던 지바고의 고뇌와 자유를 속박 당하면서도 시대에 저항하는 모습을 보여주여 현대를 살아가는 소시민 및 의사들에게도 큰 감명을 준 바 있다. 냉소적인 측면에서 바라보는 ‘닥터 지바고’ 는 러시아 혁명의 피비린내나는 격변기 속에서도 지바고 만큼은 의사라는 이유로 특혜(?)가 주어지면서 아름다운 사랑(일종의 불륜이긴 하지만)을 하면서 詩까지 쓴다는 이야기다. 즉 영화 ‘지바고’가 한국 사람들의 정서 속에 의사라는 조건에 대한 환상을 심어놨다는 이야기다. 물론 이같은 가설에 대해서는 더 많은 검증이 필요하겠지만 아무튼 ‘지바고’를 보고 성장한 기성세대(의사)들이 오늘날 한국 의료계의 풍토를 토착화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다시 영화 얘기로 돌아가서 ‘지바고’는 발표 당시 뉴욕 타임스 등으로 부터 혹평을 들었다. 러시아 혁명의 대 서사시를 지바고와 라라의 사랑 이야기로 둔갑시켜버렸기 때문이다. 진부한 멜로 드라마 속에 혁명의 대서사시는 들러리로 전락해 버렸다는 것이다. 요즘 한국이 의료 개혁 문제로 시끌벅적하다. 각자의 편에서 이야기를 들어보면 각기 입장이 타당한 것 같다. 서로 물러설 수 없는 한판 승부… 팽팽한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것을 보면 몸 아픈 환자들에 대한 걱정이 앞서지만 마땅히 대안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개인적인 생각을 펼치자면 정부는 러시아 혁명의 대서사시를 노래하고 있는데 의사들은 영화 속의 주인공… 오마 샤리프의 달콤한 사랑과 의사들의 자부심만 내세우고 있다고나할까. 모두 살자고 하는 몸부림인데, 의사라 해서 시대의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을 것이다. 각자 시대는 그 시대에 맞는 요구가 있는 법이다. 급진적이든 점진적이든 개혁은 피할 수 없다. 다만 한국이라는 나라는 한국만의 정서라는 것이 있다. 굳이 그것을 ‘지바고의 정서’라고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한국의 의사들은 한국 의사들만의 자존심이라는 것이 있다. 의사는 생명을 다루는 예술가인가 아니면 하나의 기능공에 불과한 것인가? 각자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이번 문제가 그렇게 간단하지 만은 않다는 것이 확연히 드러난다. 의료 문제는 의사들 손에 의해 해결하는 것이 최선책이라고 말한다면 감상주의로 비쳐질 수 있지만, 의료 문제는 냉정한 시각보다는 부드러운 시각으로 다가가는 것이 어떨까,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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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