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흥진의 영화 이야기 - 올림픽 기록 영화 ‘올림피아ㆍ도쿄 올림피아드’ ★★★★★ (5개 만점)
▶ 육체ㆍ영육을 모두 불사르는 경쟁속 선수들의 환희와 좌절을 담은 걸작
머리에 월계관을 쓴 손기정이 우울한 표정으로 시상대에 서 있다.
파리 올림픽을 맞아 빼어난 2편의 올림픽에 관한 기록영화를 소개한다. 하나는 손기정이 가슴에 일장기를 달고 마라톤 경기에서 우승을 한 베를린 올림픽을 기록한‘올림피아’(Olympia·1938)이고 다른 하나는 일본의 명장 곤 이치가와가 도쿄 올림픽을 담은 시적인 가록영화‘도쿄 올림피아드’(Tokyo Olympiad·1965)다.
1936년에 열린 베를린 올림픽을 찍은 흑백영화(220분)로 히틀러의 총애를 받으며 ‘히틀러의 여인’이라 불리었던 배우출신의 미녀감독 레니 리펜슈탈의 작품이다. 물 흐르는 듯한 카메라 동작으로 움직이는 인간의 육체와 영육을 모두 불사르는 경쟁 그리고 이상형으로서의 선수들과 그들의 환희와 좌절을 담은 걸작이다.
이 영화는 히틀러와 그의 선전상 요젭 괴벨스가 막 득세한 나치즘을 세계에 선전하기 위해 만든 것으로 이로 인해 비판도 받았지만 그런 정치적 의도를 떠나서 보면 그리스의 이상주의를 예찬한 작품이다. 카메라는 처음에 그리스 신전들의 기둥들을 다중노출로 보여주면서 이어 주자에서 주자로 넘겨지는 성화를 큰 걸음으로 따라가다가 마침내 거대한 베를린 주 경기장으로 따라 들어온다.
특히 이 영화는 ‘일본인 손기정’이 마라톤에서 우승하는 모습이 생생히 기록돼 한국인들에게는 남 다른 감회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머리를 짧게 깍은 약간 깡마르나 강인한 얼굴과 몸을 지닌 손기정이 가슴에 일장기를 달고 주 경기장으로 들어서자 장내 아나운서가 “일본의 손기정이 일등으로 들어오고 있다”라고 말한다. 이어 카메라가 일본국가가 연주되는 가운데 게양되는 일장기와 월계관을 머리에 쓴 어두운 표정의 손기정의 얼굴을 교차해 보여준다.
영화는 콧수염을 한 히틀러가 관람석에 괴벨스와 나란히 앉아 독일 선수들의 승패에 기뻐했다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하는 모습이 자주 나오는데 리펜슈탈이 당시 유대인 핍박으로 세계의 지탄을 받고 있던 히틀러를 인간적으로 노출시키려했던 것 같다.
리펜슈탈은 다이빙, 높이뛰기, 봉고도, 투원반 및 승마경기 등에 참가한 선수들의 만감이 교차하는 얼굴 표정과 그들의 경기 장면을 슬로모션 등의 촬영으로 시적으로 잡아내고 있어 아름답다는 찬사를 나오게 만든다. 이 영화가 우수한 까닭은 단순히 경기 장면과 경쟁자들의 외적 동작이나 표정을 기록하는데 그치지 않고 경기와 경쟁자들의 내적 감정과 정신까지를 탁월하게 추출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선수들이 경쟁하면서 쏟아내는 에너지 속의 육체적 존재의 아름다움을 극적이자 서정적으로 담은 걸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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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흥진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