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촌뜨기’가 미 부통령 후보로…“내 이름은 J.D. 밴스다”

2024-07-26 (금) 하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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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영화 ‘힐빌리의 노래’

▶ 하층 백인 노동자의 가족사 다뤄
▶오스카 수상 감독 론 하워드 연출

‘촌뜨기’가 미 부통령 후보로…“내 이름은 J.D. 밴스다”

가난과 가족해체, 무기력, 그리고 약에 찌든 이들이 모인 힐빌리 세계에서 어린 제이디(오웬 아스탈로스)는 강인한‘마모’(할머니의 애칭·글렌 클로즈) 덕분에 성실함을 무기로 살아가게 된다. [넷플릭스 제공]

공화당 대선 후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2024 대선 러닝메이트를 발표하자 2020년 개봉 영화 ‘힐빌리의 노래’(Hillbilly Elegy)가 넷플릭스 시청순위 10위권에 올라있다. 이는 트럼프 지지층의 바탕인 가난한 백인 노동자 계층 출신으로 오하이오주 연방상원의원에 오른 J.D.밴스(39) 부통령 후보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반영한다. ‘힐빌리’는 촌뜨기, 시골사람을 일컫는 말로 ‘레드넥’(redneck)처럼 가난한 백인 노동자 계층을 낮춰 부르는 표현이다.

제이디(J.D.)가 애칭인 제임스 데이빗 밴스(게이브리얼 배소)는 1984년 쇠락한 러스트벨트 지역인 오하이오에서 태어났다. 간호사로 일하는 이혼한 어머니, 누나와 함께 외할아버지·외할머니 손에서 자란 그는 가정폭력과 중독에 찌든 불우한 가정환경에서 자랐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해병대에 입대해 5년을 복무했고 이라크전에 참전했다. 이후 오하이오주립대에서 정치학과 철학을 전공했고 예일 로스쿨을 졸업한다. 인도계 엘리트 집안 여자친구 우샤 칠리쿠리 밴스도 예일 로스쿨에서 만났다.

‘힐빌리의 노래’는 그가 그토록 원하던 로펌 변호사의 삶에 근접한 순간 어머니가 마약에 손을 댔다는 전화를 받으며 시작된다. 잊고자 노력했던 고향으로 10시간을 넘게 차를 운전해 돌아간 그는 또다시 현실의 벽에 부딪힌다. 가난한 시골 애팔래치아의 가족이 맺고 있는 복잡한 관계와 대면하게 된다. 그곳에선 중독에서 벗어나고자 몸부림치는 어머니 베브(에이미 애덤스)와의 위태로운 관계 또한 그를 기다리고 있다. 약 검사를 피하기 위해 아들 오줌을 받아다 소변검사에 대신 내던 그 어머니. 그러나 제이디는 자신을 키워준 강인하고 현명한 할머니(글렌 클로즈)의 추억에 마음을 기대며 그의 인생에 지우지 못할 흔적을 남긴 가족을 포용한다.


아카데미 수상 감독 론 하워드가 연출한 ‘힐빌리의 노래’는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른 J.D. 밴스의 회고록(2016)이 원작이다. 생존과 승리로 점철된 한 가족의 사적인 여정이 작가의 개인적 기억으로 드러나는 수작이다. 집필 당시 32살이었던 그는 “물질적 빈곤보다 더 고통스러웠던 것은 안정감과 소속감을 느낄 대상의 부재, 목표의식의 부재라는 정신적 빈곤이었다. 예일 로스쿨을 졸업하면서 성공적으로 사회에 안착했지만 자신이 탈출한 그 세계를 저버릴 수 없어 이 책을 썼다”고 밝히고 있다. 그리고 그는 “진실은 냉혹하다. 그중에서도 산골 사람들에게 가장 냉혹한 진실은 자신의 처지를 솔직히 털어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잭슨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상냥한 사람들로 가득하다. 그러나 약물 중독자도 널려 있고, 여덟 명의 아이를 만들 시간은 있었지만 부양할 시간은 없는 사람이 최소한 한 명 이상 있다. 잭슨의 경치는 두말할 것 없이 아름답지만, 환경 폐기물과 마을 곳곳에 널린 쓰레기가 그 아름다움을 가린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도 있지만, 많은 이가 푸드스탬프에 의지한 채 살아가며 땀 흘리는 노동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잭슨은 블랜턴가 남자들만큼이나 모순투성이다”라는 서술로 운이 없다고 툴툴대는 머저리들로 가득한 힐빌리의 세계를 신랄하게 비판한다.

서로 다른 여정을 겪어온 3대를 따라가는 ‘힐빌리의 노래’는 제이디와 그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그들이 겪은 절정과 추락의 순간을 섬세한 통찰력으로 탐색한다. 소외와 가난, 가족해체와 체념의 문화를 극복하며 그래도 가족의 소중함을 강조하는 것으로 끝난다. 역주행하는 넷플릭스 영화 ‘힐빌리의 노래’가 J.D. 밴스의 정치 인생에 약이 될지 독이 될지 앞으로가 궁금해진다.

<하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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