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올림픽 국가대표선수들

2024-07-24 (수) 정숙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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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막을 올리는 제33회 파리 올림픽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관심만 뜨거운 게 아니라 날씨도 너무 뜨거워서 역대 가장 더운 올림픽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100년 전 1924 파리올림픽 때보다 기온이 섭씨 3.1도 상승했다니, 지구온난화의 결과를 현실적으로 체감하는 대회가 될지도 모르겠다.

8월11일까지 보름 동안 열리는 이번 올림픽에는 206개국 1만500명의 선수들이 참가해 32개 종목에서 최고의 실력을 겨룬다. 미국에서는 592명, 한국에서도 144명의 선수들이 출전한다.

올림픽의 경기종목은 IOC가 정한 28개 핵심 종목 외에 개최국이 선정한 4~5개의 선택종목이 포함되는데 올해 파리올림픽에 추가된 새 종목은 서핑, 스케이트보딩, 스포츠 클라이밍(암벽등반), 브레이킹이다.


이 가운데 관심을 끄는 것이 올림픽 사상 최초의 댄스스포츠인 브레이킹으로, 여기 도전하는 세계 최강의 비보이 16명과 비걸 16명 중에 한국계가 3명 포함돼있다. 한국의 비보이 홍텐(40, 김홍열), 미국의 비걸 서니 최(35), 캐나다 비보이 필 위저드(27, 필립 김)가 그들이다.

수많은 세계대회를 휩쓸며 우승한 이들의 퍼포먼스 영상을 보면 신기에 가까운 현란한 동작에 입을 다물 수가 없다. 자신의 몸을 바닥에 굴리고 허공에 띄우며 마음대로 까불이는 브레이크댄스, 그 자유로운 동작들은 각 댄서의 창의적인 ‘스타일 무브’를 타고 예술로 승화한다.

이 분야 최초의 올림픽 대표선수가 되기까지 비보이들이 헤쳐온 여정을 살펴보면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다. 학업과 커리어와 보장된 미래를 포기한 채 자신의 모든 것을 건 열정과 용기와 노력이 경이롭다. 이들뿐이랴, 모든 국가대표선수들은 불굴의 의지로 자신의 한계에 끊임없이 도전하며 새로운 길을 개척해온 영웅들이라 할 수 있다.

얼마 전 감동적으로 읽은 책 한권이 있다. 한인 부동산업계에서 널리 알려진 수 초이(최수경)씨의 자서전 “치열하고 아름답게”(해드림 출판)가 그것이다. ‘대한민국 국가대표 탁구선수에서 미국의 부동산 전설이 된 수 초이’라는 부제가 달린 이 책에서 최씨는 1960년대 한국의 국가대표 탁구선수가 훈련받았던 경험을 이렇게 쓰고 있다.

“…합숙하며 하루 종일 탁구만 치는 훈련이 계속됐다. 24시간 탁구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시기였다. 너무 무식해보일 수도 있겠지만 힘없는 가난한 나라의 여자선수들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세계무대에 나가 뛸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극단의 경험을 통과한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누구든, 무엇을 하든, 그렇게 열심히 하면 정상의 80~90%까지 올라갈 수 있다는 것이다. 더 잘해서 최정상에까지 오를 수 있는 건 타고난 유전자와 정신력이다. 그 정신력을 키우기 위해 선수들은 말할 수 없이 힘든 극기 훈련을 받아야했다.

국제경기에 나가면 나중에는 체력싸움이 된다. 지치는 팀이 지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탁구만 치는 게 아니라 수없이 많은 극기 훈련을 받았다. 한여름 땡볕이 내리쬐는 오후 2시에 30분 동안 운동장을 뛰고 나면 입에서 단내가 나고 하늘에서 별이 반짝반짝 내려왔다. 토끼뜀도 얼마나 많이 했는지 나중에는 다리에 감각이 없어지고 무릎이 땅바닥을 찧곤 해서 시꺼멓게 멍들기 일쑤였다. 국제대회에서는 나중에 공 하나에 울고 웃게 되기 때문에 그토록 강인한 멘탈이 되도록 극심한 훈련을 시키는 것이다. 그 단계에서는 탁구를 좋아서 하는 게 아니라 온 영혼을 다 바쳐서 해야 된다.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내가 하고 싶고 안하고가 아니라 그냥 인간기계처럼 하게 되는 것이다. 세계대회에 나가는 국가대표 선수가 되려면 ‘죽었다 깨나도 이겨야한다’는 생각뿐이지 나 개인의 생각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당시 국가대표선수는 매년 국내토너먼트에서 톱 4등 안에 들어야했는데 최씨는 5년 동안 매해 토너먼트를 치르고 선발돼 수많은 해외경기에서 한국을 대표하여 활약했다. 일본은 매년 나갔고, 싱가포르, 홍콩,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를 넘어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스칸디나비아 3국까지 원정경기를 다녔다. 1968년 아시안게임에서 일본을 누르고 한국 최초로 단체전 우승을 했을 때는 김포공항에서부터 청와대까지 오픈카 행진을 하고 박정희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의 환대를 받았을 정도로 전국민이 열광했다.


그때 탁구는 한국에서 범국민적인 운동이었다. 별다른 오락거리가 없던 시절, 작은 공과 라켓만으로 누구나 쉽게 칠 수 있으니 골목마다 탁구장이 있었고, 언제나 경쾌한 공 튀는 소리가 들려왔다. 만일 당시 탁구가 올림픽 종목이었다면 최씨와 대한민국 팀은 분명히 메달을 목에 걸었을 것이다.

탁구는 88 서울올림픽에서 정식종목으로 채택되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중국에 이어 가장 많은 14개의 메달을 획득하며 에이스 종목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이번 파리올림픽에도 한국은 6명의 남녀선수단을 파견하여 또 다른 메달을 노리고 있다.

최수경씨는 책에서 “내 인생의 맷집은 탁구훈련에서 왔다”고 썼다. 한국의 가난한 가정에서 자라나 미국에서 부동산 천만장자로 성공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대표선수로서 혹독한 훈련에서 쌓은 끈기와 오기와 용기가 큰 자산이 되었다는 고백이다.

이렇게 맷집을 키운 선수 1만 여명이 겨루는 파리올림픽이 이제 곧 시작된다. 다들 더위에 지치지 않고 노력한 만큼 좋은 성적을 거두고 돌아가길 바란다. 4년 후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리는 2028 올림픽에 대한 기대감도 솔솔 피어오르기 시작한다.

<정숙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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