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성군과 폭군, 그리고 암군

2024-07-19 (금) 민병임 뉴욕지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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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를 돌아볼 때, 성군(聖君)보다는 폭군(暴君)이 더 많았던 것같다. 성군은 어질고 덕이 높으며 정치적 능력도 뛰어난 군주를 말한다. 폭군은 권력에 대한 욕심이 크며 국민을 억압하고 종내 나라를 망쳐버린 군주를 일컫는다.

서울 한복판에 종묘(宗廟)가 있다. ‘종묘는 조선 역대 제왕과 왕비들의 혼을 모신 사당으로 조선의 역대 임금은 27명이지만 35명의 왕이 모셔졌다. 태조의 선조 네 분, 사도세자(장조), 효명세자(익종)처럼 나중에 왕으로 추존된 분이 열 분이나 된다.

역사에 자주 등장하는 왕은 대개 정전에, 태조의 4대조와 재위기간이 짧거나 나중에 추존된 분은 영녕전에 모셨다. 다만 효명세자만은 대한제국 시절에 ‘문조익황제’로 추존되었다.‘ (유홍준 문화유산답사기 ‘아는 만큼 보인다’에서 인용) 이 정전에 연산군과 광해군의 신주는 없다. 그들은 끝내 종묘에 들어오지 못했다. 연산군은 내놓은 폭군이지만 광해군은 폭군이 되기 전까지의 행적을 살펴보아야 한다.


임진왜란 최전선에서 분투했고 명과 후금 사이에서 실리 외교를 추구한 광해군은 고통받는 백성들을 위해 대동법을 실시했다. 대동법은 각집마다 지역 특산물을 납부해야 했던 공납 제도를 미곡으로 납부하도록 바꾸었다. 폭군이라고 해서 꼭 암군(暗君: 정치를 심각하게 못한다)은 아닌 것이 때로 정치를 잘하고 베풀기도 한 것이다.

“종묘와 사직이 위태로운 이 난세에…” 사극 드라마에 자주 나오는 대사다. 유교가 국가의 이데올로기인 조선은 유교 경전에 따라 궁궐 왼쪽에 신전인 종묘, 오른쪽에 사직(社稷)을 세웠다. 사직에서 ‘사’는 토지의 신, ‘직’은 곡식의 신이다. 백성들의 생존 토대를 관장하는 신을 받들어 모신 것이다.

하지만 조선은 사대부의 나라이지 백성의 나라는 아니었다. 양반과 상놈의 구별이 어찌나 심한 지 백성들은 평생 천대받고 노동에 시달렸다. 제4대 세종대왕은 이러한 처지의 백성을 위하여 훈민정음을 창제, 오늘날 전 세계에 한류 붐을 조성한 디딤돌을 놓았다. 현재 세계의 젊은이들이 한국말과 한글을 읽히고 K팝 떼창을 한다.

조선시대 최고의 성군 세종대왕은 쓴소리하는 신하를 늘 곁에 두었다. 황희, 맹사성, 허조 3대 정승이다. 이 중 황희 정승은 세자 양녕대군의 폐위를 반대하고 세째 아들인 충녕이 왕이 됨은 불가하다고 주장하여 귀양까지 갔다. 세종은 왕에 오른 후 그를 중용시켜 옆에 두고 내내 직언과 싫은 소리를 들었다. 그는 아니다 할 수 있었고 나라의 미래에 정확한 판단력을 지녔을 뿐 아니라 청빈한 삶을 살았다.

그에 반해 폭군은 쓴소리를 싫어했고 그런 말을 하는 신하는 귀양을 보내거나 죽였다. 신하는 왕과 백성을 이어주는 소통의 창인데 이것이 막히니 백성들의 삶은 피폐했다. 왕이든 대통령이든 한 나라의 리더는 아랫사람의 말을 듣고 판단, 결정하는 능력, 마음까지 다스리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귀에 듣기 좋은 말만 좋아라하면 소통 부재에 거짓의 나라가 된다.

러시아의 푸틴, 중국의 시진핑, 북한의 김정은이 성군, 폭군, 암군 어느 것에 속할지를 따지기 전에 당장 미국 사는 우리의 발등 위에 ‘대선’이란 불똥이 떨어져 있다.

77세 트럼프는 지난달 27일 바이든과의 첫 TV토론 후 지지율 격차에서 월등 우세하자 의사당 폭동, 입막음 돈 등 수사 중인 사안들에 ‘마녀사냥’을 적극주장하며 ‘미국을 그 어느 때보다 위대하게’라는 선거 구호를 외치고 있다.

81세 바이든은 TV토론에서 고령으로 인한 인지력 저하로 참패했다. 그러나 대선후보 사퇴 불가 입장을 밝혔고 질 바이든과 아들 헌터는 ‘계속 싸울 것’이라고 밀어붙이고 있다. 트럼프의 부도덕을 부각시키며 도덕적 리더십과 국가 통합을 강조하지만 그 구호가 제대로 먹힐지 미지수다.

바이든이나 트럼프는 성군, 폭군, 암군, 명군(名君: 훌륭한 치적으로 이름을 남긴 군주), 인군(人君: 성품은 어질지만 정치적 능력이 없다) 중 어디에 속할까, 둘 다 성군이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유권자들은 노인이 정치하는 나라, 미국의 미래를 위해 누구를 택할지 혼란스럽기만 하다.

<민병임 뉴욕지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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