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새드엔딩보다 해피엔딩!

2024-07-12 (금) 민병임 뉴욕지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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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시대를 지나고 사람들의 생활이나 사고방식이 여러모로 바뀌었다. 코로나로 희생된 유가족의 마음을 달래주고 안정시키는 심리 치유 직업이 각광받고 있다. 또 위로와 성찰의 시대이다보니 상실과 슬픔, 좌절을 딛고 명상서적이나 희망을 주는 책이 많이 읽히고 있다.

‘인생은 혼자, 홀로 서려면 단단해져야 한다’는 쇼펜하우어의 철학과 삶의 태도가 주목받고 있고 장기간의 경제 불황으로 인한 자기계발서도 베스트셀러다. 이러한 책 중에 셸비 반 펠트의 ‘아쿠아리움이 문을 닫으면’이 있다. 번역책이므로 처음엔 별 문장의 매력을 못느끼다가 중간쯤부터는 스토리텔링에 끌려가 그 두꺼운 책을 놓지 못하고 한 번에 다 읽게 되었다. (2022년 5월 출간즉시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시카고에 살고있는 작가는 거대태평양문어가 수조를 탈출하는 인터넷 영상을 보고 주인공으로 문어 마셀러스를 떠올렸다고 한다. 마셀러스는 수명이 4년 1,460일, 수족관에 갇혀 수명을 160일 남기고의 외출과 활약을 보여준다. 5억 개의 뉴런을 지녔고 그것들은 여덟 개의 팔에 퍼져있다. 사람 이상으로 똑똑하고 마음씀씀이가 크다. 문어가 말을 하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이야기가 황당무계하다 하겠지만 책을 읽어가다보면 인간보다 더 낫다고 느껴지고 실제로 그런 문어가 있었다고 믿게 된다. 마셀러스와 토바, 캐머린, 워싱턴주 소웰베이 주민들, 얼마나 이야기가 따뜻한지 모른다. 줄거리를 소개하진 않겠다. 이 책은 내용을 모르고 읽어야만 한다.


요즘 세상에 돈 있고 권력있는 자들이 너무 많고 가난하고 힘없는 자들 또한 넘쳐나다 보니 사람들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새드엔딩보다는 해피엔딩을 원한다. 힐링 영화나 드라마가 그 어느 때보다 인기있다.

지난 5월 종영한 드라마 ‘눈물의 여왕’을 예로 들어보자. 서로가 첫사랑인 김수현(백현우 역)과 김지원(홍해인 역)이 헤어지고 온갖 거짓말과 협박을 일삼는 박성훈(윤은성 역)이 기억 잃은 지원을 미국으로 데려갔다고 하자. 아마도 시청자들은 방송국에 항의 전화하고 욕하고 난리가 났을 것이다.

최근 종영한 교통범죄수사팀(TCI) 형사들의 맹활약을 다룬 드라마 ‘크래시’도 권선징악으로 통쾌한 결말을 보여주었다. 톱스타들이나 러브 라인 없이도 월화드라마 1위로 마감한 것은 결국 저지른 이들이 죄값 받게 만드는 청량감이 비결이었다. 이 역시 사건을 해결하고 보니 뒤에는 더 큰 권력이 묘수를 부리고 있다고 하자 시청자들을 현실도 해결되는 일 없어 답답하기 짝이 없는데 드라마까지 그럴 거냐고 적극항의할 것이다.

하지만 당장의 만족감을 주는 해피엔딩이 아니라 그런 결말이 나오기까지 감동과 여운을 느낄 수 있는 개연성 있는 드라마여야 한다. 비극으로 가는 복선을 잔뜩 깔아놓고 시청자의 요구라면서 갑자기 결말을 비틀어버리면 청취자를 기만당한 기분이 든다.

현실에선 정의가 구현되지 않고 만만치 않은 세상일수록 사람들은 허구와 픽션의 세계에서 해피엔딩을 원한다. 코로나19의 긴 세월동안 집안에 갇혀 누가 죽었다는 소식만 들으면서 견뎌낸 사람들은 더더구나 그렇다고 할 수 있다.

한때 새드엔딩이 폭발적 인기를 얻은 시기도 있었다. 사람들은 주인공의 엄청난 삶의 굴곡과 비극을 보고 내 인생은 이것과 비교해 결코 나쁘지 않구나 위로받았다는 것이다. 우리가 살면서 부딪치는 모든 일에 새드엔딩과 해피엔딩이 있다. 누구나 삶이 힘들수록 해피엔딩을 바란다.

소서림 장편 ‘환상서점’의 한 부분을 소개한다. 환생을 거듭하여 그를 다시 만나러 온 여자와 영원히 살며 외딴 서점에서 그녀를 기다리는 남자의 이야기인데 우리네 평범한 일상이 최고의 해피엔딩임을 느끼게 해준다.

‘사막에서 별을 세고, 바다에서 일출의 아름다움을, 눈덮인 산의 고요를, 어느 한가로운 날엔 흘러가는 시간의 무상함과 소중함을 논하고, 함께 잠들고, 깨어나고, 치열하게 살다가 평온한 계절을 상상하고 결말로 가는 먼 여정을 함께 걷게 될 것이다...비로소 인간의 삶이었다.’

<민병임 뉴욕지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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