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논란이 된 ‘영 피프티(Young fifty)’, 그러니까 예전 50대와는 다른 오늘날의 ‘젊은 50대’를 뜻하는 이 단어만큼 세대 간 극명한 온도 차를 보인 단어는 없을 것이다.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가 ‘인구수가 많고 구매력이 왕성한 소비 주체’로서 ‘영 피프티’를 소개하자 온라인에선 온갖 비판과 야유가 쏟아졌다.
그 반발의 대부분은 2030세대에서 비롯됐다. 반면 4050세대는 “틀린 말도 아닌데 왜 욕먹는지 모르겠다”라는 입장인 걸로 보인다.
‘영 피프티’라는 단어의 취지는 공감한다. 우리 부모님 세대의 환갑이 조부모님 대의 환갑과 다르듯, 50대가 된 X세대가 앞선 세대들보다 젊다는 데는 이의가 없다. 그런 점에서 으레 하던 대로 소비자층을 정의했을 뿐인 김 교수도 ‘영 피프티’를 두고 벌어진 논란이 황당했을 것도 같다.
‘영 피프티’를 향한 2030세대의 경멸은 단지 기성세대가 젊음을 어필한다는 데 있지 않다. 논란을 이해하려면 그 전에 이미 희화화된 밈으로 자리 잡은 ‘영 포티(Young forty)’를 알아야 한다.
‘영 포티’는 ‘나의 아저씨’ 이선균에 감정 이입하면서 정작 자기 주변을 돌보진 않고, 카페 알바생이 자신에게 호의를 보였다며 나이 차이가 20세 이상 나는 어린 여성에게 추근거리고, 놀 때만 어린 사람들과 소통하길 원하는 40대를 주로 그린다. ‘영 피프티’는 그런 ‘영 포티’의 연장선에 있다. 사회적 위신과 체면은 던져버린, 나잇값 못하는 어른에 대한 반발 심리다.
띠동갑 이성과의 로맨스를 꿈꾸는 건 철없는 이들의 망상 정도로 치부한다 치자. 그런데 그 나잇값 못하는 어른들이 정치 영역으로 들어오면 눈살 찌푸려지는 장면이 연출된다. 가장 큰 해악은 상대를 향한 조롱을 스스로 ‘힙(hip)’하다고 여기는 것이다.
“들기름, 참기름 안 먹고 아주까리기름 먹냐”며 국회에서 대놓고 장관을 조롱하는 정치인이나, ‘수박’ 같은 유치한 유행어를 만들어 반대파를 조리돌리는 지지자들이 득세하면서 정치 수준은 바닥으로 떨어졌다.
육십 줄의 당대표에게 “아빠, 아빠” 거리는 중년들의 모습은 기괴하기까지 하다.
스스로 ‘나는 젊다’고 생각하니 체면 차려야겠다는 생각도 하지 않는 모양이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이들에게선 애들 같은 말장난만 있고 어른으로서의 책임감은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한국 사회의 미래를 고민하기보다 당장의 ‘도파민 충전’에 빠져 있다.
정치권에서 국가적 의제가 실종된 지는 이미 오래. 그나마 간간이 거론되는 것들도 “우리가 책임지겠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없다. 청년 일자리 걱정하는 척하면서 자기들 일자리에 조금이라도 손해가 가면 결사반대하고, 연금 개혁하자면서 미래 세대에게 그 부담을 떠넘긴다.
이러고 체력은 40대요, 패션은 30대면 뭐하나.
나이 들수록 입은 닫고 지갑을 열라는 말을 개인적으로 좋아하진 않는다.
비용 부담을 꼭 윗사람만이 해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회적 책임만큼은 나이에 비례해야 한다고 본다.
자기보다 힘없는 사람들에게 책임 떠넘기는 모습은 꼴사납지 않은가. 결국 ‘영 피프티’를 두고 벌어진 논란은 어른이 어른답지 못한 세태에 대한 청년들의 한탄이 담겨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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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수 청년정치크루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