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이 전 미국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연방정부가 폭염에 대처하기 위해 신설한 ‘히트’ 웹사이트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1억 명에 가까운 미국인들에게 폭염경보나 폭염주의보가 발송됐다. 기상 전문가들은 올 여름 역대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무더위가 지속될 것이라 밝히고 있다.
지구 온난화에 따른 기후변화와 기후재난이 전 지구를 덮치고 있으며 미국 또한 예외가 아니다. 미국에서는 매년 많은 사람들이 폭염에 따른 열사병이나 심장마비 등으로 목숨을 잃고 있다. 연방질병통제국(CDC)에 따르면 2020년 1,156명이었던 폭염 관련 사망자는 2023년 1,784명으로 급증했다. 이는 허리케인과 토네이도로 인한 사망자를 합친 것보다 많은 숫자이다.
문제는 무수한 사망자를 발생시키는 ‘견디기 힘든’ 무더위가 이번 세기 말까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워싱턴 주립대 연구팀에 따르면 파리기후협정의 최소 목표를 달성하더라도 미국과 서유럽, 중국, 일본 등지에서 2100년까지 무수한 사망자를 발생시키는 ‘끔찍한 폭염’이 지금보다도 16배나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는 것이다.
이런 ‘끔찍한 폭염’의 대명사로 기억되고 있는 미증유의 참사는 1995년 7월의 시카고 폭염이다. 7월13일 시카고의 낮 최고 기온은 105도까지 치솟았다. 체감 온도는 125도. 그로부터 사흘 연속 100도가 넘는 폭염이 이어졌다. 전기사용량이 급증했고 정전이 잇따랐다. 시민들은 길거리 소화전 뚜껑을 열어 그 물로 더위를 식혔다.
끔찍했던 폭염이 지나간 후 곳곳에서 발견된 사망자는 무려 739명. 사망자 대부분은 신체적으로 약한 노인들과 경제적으로 빈곤한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이들은 사회적 관계가 거의 단절돼 있는 계층이었다.
‘사회적 부검’이라는 방식을 통해 이 참사를 들여다 본 학자들은 시카고 폭염에 대해 ‘사회적 재난’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경제적으로 퇴락한 지역, 방치된 치안, 서로를 믿을 수 없는 지역 커뮤니티 환경과 이런 환경 속에 시민을 방치한 시 정부의 무책임과 무관심이 초래한 비극이었다는 분석이었다.
폭염의 치명성이 확인되면서 이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기 위해 폭염에 허리케인처럼 이름과 등급을 붙이는 조치들이 확산되고 있다. 이 정책이 최초로 실시된 곳은 스페인 남부 세비야로 이 도시는 2022년부터 폭염을1~3 단계로 나누고 가장 심각한 3단계가 예상될 경우 스페인 철자 체계의 역순으로 이름을 붙여 주민들에게 위험을 경고하고 있다. 이 조치는 이탈리아와 미국 등 다른 나라 도시들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그런 가운데 최근 수십 개의 환경·노동·보건 관련 단체들이 연방재해관리청(FEMA)에 폭염을 ‘주요 재난’(major disaster)으로 지정해줄 것을 요구하는 청원서를 제출했다. 이를 통해 기후변화 대처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주와 지방 커뮤니티들에 연방 지원을 해달라는 것인데, 기금은 냉방센터 건립과 학교의 냉방시설 설치, 그리고 비상사태 발생 시 급수와 취약계층 의료 및 전기사용료 지원 등에 쓰이게 된다.
하지만 연방정부는 미온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주요 재난’ 지정은 무보험 공공 인프라의 손상과 인명 피해에 근거해야 하는데 폭염의 경우 프로퍼티 손상의 주요 위험이 아닌데다 더위에 따른 사망자 집계가 모호하다는 게 거부의 논리였다. 지난해 애리조나 루벤 가예고 연방하원의원이 폭염을 ‘주요 재난’으로 지정하는 법안을 제출했지만 공화당의 반대로 무산됐다.
이 같은 거부 논리는 날로 커지는 폭염의 치명성과 위험에 비춰볼 때 시대착오적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힘들어 보인다. ‘사회적 재난’이란 진단은 사전 대비만 잘 하면 그 피해를 얼마든 줄일 수 있는 재난이라는 애기다. 여전히 낡은 사고와 기준에 사로 잡혀 있는 연방재해관리청의 전향적인 판단이 시급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