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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라의 ‘저주토끼’

2024-06-28 (금) 민병임 뉴욕지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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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부커상 인터내셔널 최종후보에 선정되었던 정보라의 소설 ‘저주토끼’는 당시 전세계의 주목을 받았었다. ‘저주’가 들어간 제목이 별로라서 읽지 않다가 얼마 전, 이 책을 읽으면서 완전히 빠져버렸다. 줄거리를 요약한다.

분노와 슬픔과 원한이 넘치는 세상에서 타인에게 고통과 불행과 죽음을 기원하는 사람들, 그 덕분에 저주 사업은 더욱 호황이다. 무당, 점쟁이 등이 천민 취급받던 시절, 할아버지는 저주용품을 만드는 집안 자식으로 천민 취급조차 못 받았다.

그런데 술도가 집은 돈 있고 힘 있다고 남한테 함부로 하지 않았고 그 집 아들은 할아버지와 절친으로 자랐다. 친구는 쌀을 발효시켜 술을 만들지 말라는 정부 시책에 따라 생산 방법을 연구했고 더 좋은 기술을 개발했다. 그런데 이를 시기 질투한 경쟁사가 그 기술을 넘보면서 허위로 소문을 퍼트려 회사가 망하고 30대 젊은 나이의 친구는 자살하고 그 집안은 풍비박산한다. 회사는 헐값에 경쟁사에 넘어간다.


할아버지는 토끼가 나무 아래 앉아있는 모습을 한 전등을 만들었다. 새하얗고 예쁜 토끼의 등을 쓰다듬으면 불이 들어오는데 저주하려는 상대방이 저주 물품을 직접 만져야 효과가 나타난다. 드디어 토끼 전등은 그 회사 창고로 옮겨지고 밤마다 창고에 있는 종이가 갉아 먹히더니 흰 토끼는 나날이 본사 창고, 지사 판매처 창고마다 번식한다. 서서히 저주는 통하여 회사가 무너지고 사장의 일가족도 한 명씩 죽어간다.

할아버지는 친구의 복수는 했지만 그 벌로 죽어도 죽지 못한다. 달이 어스름하게 구름에 가린 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밤, 직업을 대물림한 손자에게 나타나 토끼 전등을 켜고 같은 이야기를 반복한다.

‘저주토끼’는 ‘돈과 권력이 정의이고 폭력이 합리이자 상식인 사회에서 상처 입고 짓밟힌 사람들이 막다른 골목에 몰렸을 때 찾아오는 마지막 해결책’이라고 했다. 사실, 보통의 사람들은 힘 가진 자나 윗사람의 부당하고 일방적인 횡포를 당해도 복수할 생각을 못한다. 그저 돌아서서 이게 아닌데 한다.

작가 정보라는 젊은 여성작가로서 통찰력, 상상력, 추리력, 한 번에 끝까지 읽게 만드는 군더더기 없는 글 솜씨가 대단했다. 본인은 원래 공포 및 괴기, 추리 소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저주토끼’ 이후 정보라 작가의 책을 모두 찾아 읽고 있다.

남부 뉴올리언스에 가면 번화가인 버번 스트릿에 부두교 박물관이 있다. 알다시피 뉴올리언스는 노예상인들이 서아프리카에서 강제로 데리고 온 흑인들이 많이 살고 있다. 그들 고유의 음악, 종교, 음식문화 등을 지켜왔는데 그렇게 탄생한 문화가 바로 재즈요, 크레올과 잠발라야로 대표되는 흑인음식, 거기에 하나 더 ‘부두교’다. ‘좀비’로 알려진 부두교는 서아프리카 지역 토착종교이다.

수년 전 뉴올리언스를 방문했을 때 이 부두교 박물관을 가고 싶었다. 거리의 진열장마다 귀신과 해골 마스크가 보이면 고개를 돌리고 걸었는데 짚으로 만든 실제의 저주인형들이 전시된다니, 의식에 사용된 장신구들을 모아놓았다니, 호기심은 넘쳐나나 도저히 무서워서 갈 수가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일종의 흑인문화인데, 사람 사는 하나의 모습인데, 가볼 걸 그랬다 싶다.

질투와 권력욕에 눈먼 조선 왕실 중전과 후궁들을 다룬 드라마는 시청률을 보장한다고 한다. 다른 이를 해하기 위한 무속과 각종 저주행위가 나온다. 직접 칼날로 싸우는 것보다 사람 모양 인형에 바늘을 찌르거나 활을 쏘는 그 마음이 더욱 섬?하다.

많은 심리전문가들이 상하관계가 확립된 조직사회에서 공정성을 회복시킬 방법이 없을 때 보복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인간의 자연스런 심리 중 하나라고 했다. 복수가 어려운 상대에 대한 부정적 감정을 해소할 방법이 없는 사람이 그것이 쌓여 우울증이 깊어지고 자살까지 갈 지경일 때 부두인형(Voodo Doll)의 긍정적인 효과를 입증한 연구도 있다.

살다보면 인간관계에서 이러한 일이 늘 발생한다. 정보라의 ‘저주토끼’는 대신 복수해주어 시원하면서도 그래, 저주는 나쁜 것이니 당연히 벌은 받아야지 하는 생각이 들게 했다.

<민병임 뉴욕지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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