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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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바이든이란 아픈 손가락

2024-06-18 (화)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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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거라 근심이여, 금빛 날개를 타고’(va, pensiero)는 이탈리아 최대 오페라 작곡가로 평가받는 베르디의 대표작 ‘나부코’를 대표하는 노래다.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으로도 알려진 이 작품은 슬픔과 절망, 아름다움이 뒤섞인 서정미의 백미를 보여주고 있다.

평론가들은 이것이 갈래갈래 갈라져 있던 이탈리아의 정치 현실에 대한 민중의 분노와 통일에 대한 열망을 표현하고 있다고 본다. 이탈리아 국가를 이 노래로 대체하자는 움직임이 아직도 일고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베르디 개인의 슬픔과 절망도 배어 있다. 1836년 그는 24살의 나이로 제자 마게리타와 결혼하고 1837년과 1838년 연 이어 딸과 아들이 태어나며 행복의 절정을 맛본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 1838년과 1839년 자식들이 연이어 죽더니 1840년에는 아내마저 급성 신부전으로 사망한다. 절망에 빠진 베르디는 다시는 작품을 쓰지 않겠다고 다짐하지만 주위의 위로와 격려로 이를 극복하고 쓴 작품이 바로 1841년의 ‘나부코’다.


마운트 러시모어에 워싱턴, 제퍼슨, 링컨과 함께 얼굴 조각이 있는 시오도어 루즈벨트도 비슷한 아픔을 겪었다. 1884년 2월 12일 그가 가장 사랑하던 아내 앨리스가 첫 딸을 낳은지 불과 이틀 뒤 역시 신부전증으로 사망한 것이다. 그리고 같은 날 그의 어머니 마르다도 열병으로 세상을 떴다. 루즈벨트는 그날 그의 일기에 “내 인생에 빛은 사라졌다”고 적었다.

미국 대통령 중에 이보다 더 큰 고통을 경험한 사람은 아마도 조 바이든이 유일할 것이다. 그는 1972년 연방 상원의원에 당선된 지 불과 한 달 후 교통 사고로 아내 닐리아와 한 살 된 딸 네이오미를 잃었다. 같이 차에 타고 있던 3살 난 아들 보와 2살 난 아들 헌터는 기적적으로 목숨을 구했다. 바이든은 한 때 신을 원망하고 분노와 절망 속에 자살까지 생각했다고 한다.

설상가상으로 2015년에는 그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정도로 아끼던 아들 보가 뇌암으로 사망했다. 펜실베니아 대학을 나오고 델라웨어주 검찰총장을 지내고 델라웨어 주지사에 출마 중이던 그는 차기 대통령 감으로 주목될 정도로 장래가 촉망받던 정치인이었다. 이 일로 조 바이든은 회복될 수 없는 상처를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바이든에게 둘째 아들 헌터가 어떤 존재인지는 말할 필요도 없다. 그도 조지타운과 예일을 나온 수재이기는 했으나 모든 면에서 자신보다 뛰어난 형과 비교되며 심한 갈등을 겪다 마약에 빠지고 형이 사망한 후에는 형수와 바람을 피며 형수까지 마약 중독자로 만든다. 그리고는 아버지 이름을 팔아 외국 기업과 정부로부터 불법 로비 자금을 받고 이 돈으로 창녀를 산 후 장부를 조작해 탈세까지 저지른다. 형은 아버지에 이어 미국 대통령이 됐지만 동생은 알코올 중독자가 돼 사망한 애덤스 집안과 너무 닮았다.

약물 중독자이면서 아니라고 허위 진술을 하고 총기를 구입한 혐의로 기소된 헌터 바이든이 지난 주 델라웨어 법원에서 유죄 평결을 받았다. 현직 대통령 아들이 유죄 평결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를 두고 일부에서는 이 법이 사실상 사문화된 법이고 헌터가 기소된 이유는 그가 현직 대통령 아들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이는 루저 도널드 주장과 똑같다.

잘 적용되지 않는 법이든 자주 적용되는 법이든, 그 대상이 전직 대통령이든 대통령의 아들이든 똑같이 적용돼야 한다는 것이 ‘법 앞의 평등’이 뜻하는 바다. 유죄 결정을 내린 것도 루저 도널드 때와 마찬가지로 평범한 시민들이다.

이번 결정에 루저 도널드 지지자들은 내심 실망하고 있다. 도널드는 유죄, 헌터는 무죄 평결이 나와야 이번 재판은 정치 재판이고 사법부는 썩었다고 주장할 수 있는데 그게 잘 먹히지 않게 된 것이다.

결과는 같았지만 도널드와 바이든 양쪽이 보여준 태도는 딴판이었다. 도널드는 처음부터 재판의 공정성도 결과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더 특이한 것은 자신의 남편이자 아버지가 법정에서 중범 유죄 평결을 받았는데 법원에 나타나지도 않고 이에 대해 한마디도 하지 않는 아내 멜라니아와 딸 이방카의 태도다.

반면 바이든가는 아내 질이 전처 아들 재판에 정기적으로 참석했다. 바이든도 재판 결과를 수용한다는 뜻을 밝히면서 자식에 대한 어떤 감형도 사면도 없을 것을 분명히 했다. 그러면서도 성명을 통해 “아내 질과 나는 아들을 사랑하며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어떻게 재판 결과와 가족 구성원에 대한 두 가정의 태도가 이토록 다를 수 있는가. 올 가을 미국민들은 어느 가족이 미국을 대표하기에 더 적절한지도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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