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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느끼며] “57세입니다”

2024-06-07 (금)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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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이민 온 다음날, 윗집 사는 한인 여성이 신문을 들고왔다. 뉴욕에선 영자신문을 읽고 영어만 쓰면서 살 줄 알았는데 한국어로 된 신문이라니, 더구나 그 여성은 이민 온 당일, 한국일보를 보고 일자리를 구해 그 다음날로 잭슨하잇에 있는 직장으로 일을 다닌다는 거였다.

일자리를 신문에서? 한국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손에 든 신문을 받아서 보니 구인 구직난이 어마어마하게 몇 페이지에 걸쳐 있었다.
1967년 창간한 뉴욕한국일보는 초창기에는 새벽 5시 공항에 가서 서울에서 비행기로 온 신문을 픽업해와서 옵셋 인쇄기로 66% 축소인쇄하여 구독자에게 우편배달을 했다. 1971년 ‘뉴욕소식’을 처음으로 발행하면서 한인사회 인사들과 단체 소식 등 로칼뉴스를 전달하기 시작했다.

1968년 개정이민법이 발효되어 한국에 이민 쿼터가 배정되면서 물밀 듯 들어온 한인들은 1967년 가발 무역을 통해 기반을 구축했다. 한인사회의 팽창 및 발전과 더불어 신문도 동반 발전해왔다.
한국일보에 35년동안 있으면서 여러 잊지못할 일이 많지만 그 중 세 가지를 들어본다.
1992년 9월 18일 9.18평화대회는 한흑분규 사태에 인종 배제가 아닌 인종화합 평화대회로 1만여명의 한인들이 모여들어 당시 딘킨슨 행정부에 충격을 주었다.


신문은 브루클린 처치 애비뉴의 한인 청과상 레드애플과 처치프루츠에 대한 흑인들의 조직적인 불매시위를 1년간 상세히 소개하며 ‘오늘 매상 30달러’, ‘오늘 매상 10달러 미만’ 등, 두 가게의 폐업 방지를 위해 매일 줄어드는 매상을 소개하면서 성금 모금에 앞장섰다.

9.18대회 한달 전부터 매일같이 ‘시청 앞에 모입시다’가 한국일보 지면을 장식했다. 범교포적인 평화시위는 우리의 주장을 관철한 쾌거였다. 또 신문이 한인 커뮤니티 권익 옹호와 이익을 대변한 것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그리고 2001년 9월11일 신문사 편집국 유리창 너머로 알 카에다의 테러 공격으로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타워가 무너지는 순간을 보았다.
아침 편집국 회의에 들어가려고 막 일어났는데 어, 어 하는 동료들의 비명소리와 함께 모래성처럼 순식간에 주저앉더니 진회색 모래폭풍만 허공에 남았다.

기자들은 정신없이 현장으로 뛰어갔고 한인 희생자들과 월스트릿 인근의 자영업자 한인들의 피해상황을 취재했고 오랜기간 그들의 재기를 위해 도움이 될 기사를 게재했다.
그리고 1980년 10월18일부터 시작된 코리안 퍼레이드, 이 날이 되면 전직원이 아침 일찍 맨하탄 32가 장터가 열리는 한국일보 부스에 모였다. 하루종일 퍼레이드를 취재하고 진행을 돕는 봉사를 했다. 한인사회 최대문화행사로 미국 사회에 한국 문화와 전통, 한인사회의 위상을 높이는데 이바지해 온 것이다.

창간 57년을 맞은 한국일보는 한인들이 미국에 정착하는데 필요한 안내자이자 등불 역할을 해왔다. 청과, 수산, 봉제, 드라이클리닝, 네일 등 한인들의 주요업종을 소개하고 세계적 불황이 닥치면 새로운 업종과 타개책은 물론 뉴욕 비즈니스 정보를 즉각 전달했고 고국의 정치적 소식도 세세하게 알려주었다.

한인들과 애환을 같이 한 여러 기사 중에 본인이 담당한 올드타이머 시리즈와 통판 인터뷰 ‘차한잔의 초대’는 고난과 영광을 증언하고 독자에게 지혜와 용기를 주었다고 생각한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종교, 교육, 스포츠 분야 등에서 최고의 자리에 선 이들, 아메리칸 드림을 이룬 자, 단체의 리더, 존경받는 종교인 등의 생생한 이야기를 담았다. 2010년 12월부터 2017년 12월까지 7년간 게재된 200여 명의 이야기는 뉴욕한인들의 산 역사이다.

지금도 한인사회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사람이 많지만 김형린, 서상복, 조시학, 현봉학, 홍옥순, 윤여태, 최희용, 임세창, 김윤태, 김차섭, 조봉옥 등 저 하늘의 별이 된 사람도 제법 있다.

이민사회의 성실한 기록자로서 그 책임을 다하고 있는 한국일보, 이민자들이 낯설고 물선 이국 땅에 뿌리내리는데 든든한 동반자가 되어준 신문의 57세 생일이다. 눈뜨는 하루의 시작이 한국일보라는 독자들과 함께 “해피 버스데이 투유!”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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