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앗이’라는 단어가 있다. 일을 한다는 뜻의 ‘품’과 ‘갚는다’는 뜻의 ‘앗이’가 결합된 합성어이다. 1대 1로 일을 서로 거들어주면서 품을 갚는 것을 의미한다.
품앗이는 임금을 주지 않는 한민족 고유의 교환노동 관습으로 파종, 밭갈이, 논갈이, 모내기, 보리타작, 추수 등 농사일 외에도 지붕 잇기, 집짓기 및 수리, 나무하기 등 생활상 품앗이가 있다.
품앗이는 두레와 함께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공동노동 방식이다. 두레는 촌락공동체 단위의 집단적 공동노동으로 규모가 크고 전체적이지만 품앗이는 이웃끼리 일손을 빌려 서로 일을 돕는 소규모라 할 수 있다. 김장, 결혼, 장례에도 품앗이가 사용되며 조상의 슬기와 지혜로움을 보여준다.
조선 후기 정조 시대에 실학자 이송이 농촌에서 불리던 품앗이 노동요를 정리한 것이 있다.
“오늘은 자네 콩밭 호미로 김매고/ 내일은 우리 밭을 김매자/ 오늘은 자네 수수를 베고/ 내일은 우리 오이를 따자/ 오늘 내 부지런히 일했으니/ 내일 자네도 게으름 피지 말게나/ 자네 밭이 황폐하나 먼저 함이 옳고/ 우리 싹이 어리니 조금 늦게 하자/ 묻노라, 한양 사는 놈들/ 무슨 일로 밤낮 싸움이나 하는지”
이웃 간에 양보와 배려심, 그리고 양반네에 대한 풍자 정신을 볼 수 있다. 현재 한국에서는 농사일을 비롯 모든 노동이 임금노동으로 변했고 모내기나 추수철, 온실 작물 수확기가 되면 일할 사람을 못 구해서 제3국에서 노동자를 모집해온다고 한다.
하지만 한국인들의 나눔과 공동체 문화는 ‘품앗이’라는 용어로 여전히 남아있고 지난 수년간 전 세계를 휩쓸고 지나간 코로나19 시대에도 이를 실감할 수 있었다.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고 집에 머무는 가족, 친지, 친구를 위해 생필품과 식료품을 사서 문밖에 두거나 음식을 해서 나른 것이다. 또 마스크와 손 세정제를 문 앞에 두고 가기도 했다. 코로나19에서 회복된 사람은 다른 환자 집 앞에 생필품과 음식물을 두고 가는 등 상부상조하면서 우리는 그 험한 시기를 살아냈다. 최근에도 이 ‘품앗이’ 정신이 뉴욕한인사회에 은연중 퍼져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한창 골프시합 철이 되었다. A단체가 시합을 주최하면 다른 단체들이 힘을 합해주고 후일 참석했던 B단체가 행사를 주최하면 A단체가 임원들과 참석하는 등 서로 돕는 품앗이를 하는 것이다. 이는 연말연시 행사에도 마찬가지이다.
얼마 전에는 지인의 딸이 넷째 아기를 낳았다. 산간 하는 친정엄마의 반찬이라는 것이 다 똑같다. 소고기미역국, 곰국, 늙은 호박, 갈비찜. 시금치나물, 고등어/갈치구이, 가지나물, 멸치볶음, 장조림, 김구이, 무생채, 호박전, 감자양파 볶음… 10일이 지나면 이러한 반찬이 물릴 때가 된다.
하루는 저녁준비를 하려는데 딸이 말했다. “반찬 준비 하지마세요. 저녁이 올 거야. 앞으로 계속.” 얼마 후 문 앞에 음식 보따리가 놓여있었다. 첫날은 한국 유명잔치집의 갖가지 반찬과 떡이, 두 번째 날은 분홍빛 스테이크와 아스파라가스, 윤이 자르르 흐르는 닭다리 조림, 세 번째 날은 유명 마트의 닭튀김 요리, 네 번째 날은 갖가지 중국요리 등등… 맛도 훌륭하고 양도 어찌나 많은지, 그저 감탄만 했다고 한다.
한인교회 친구들이 음식을 직접 하거나 맛집에 주문하여 보내준 것이라고 했다. 이들은 30대 후반이거나 40대로 보통 3~4명의 아이를 낳는데 이렇게 순번을 정해 돕고 있었다. 딸 역시 다른 친구가 아이를 낳으면 음식을 직접 만들어 집 앞에 놓고 온다는 것이다. 참으로 유쾌하고도 고맙기 짝이 없는 ‘품앗이’였다.
한국계 미국인으로 살면서 서로 의지하고 힘이 되는 친구들이 있다는 것이 그들에게 얼마나 다행스럽고 든든한 백인지 모른다. 한국에서는 아이를 낳지 않아 걱정이라는데 뉴욕 1.5세~2세들은 염려할 것 없겠다. 자기 일 잘하고 애들도 잘 낳으면서 상부상조하는 ‘품앗이’ 정신의 정수를 보여주니 말이다. 사람살이가 그래야 하는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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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임 뉴욕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