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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폭력, 주위 도움 없이는 나아지지 않아

2024-05-25 (토) 유동숙 한미가정상담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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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폭력은 의외로 우리와 가까이 있는 사회문제이다. 가정폭력이 사회문제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1970년대에 여성의 권리보장과 권익보호 운동이 일어나면서, 이에 관련된 여성의 취업, 월급보장, 아이들 케어 문제, 가정폭력 등 가정안의 문제들이 미디어와 사회 운동가들을 통해 집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가정폭력 사건을 보고하는 숫자가 늘기 시작했고, 학대/구타당한 아내라는 카테고리가 새롭게 나뉘어져 보고되기 시작했다.

가정폭력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관계상의 파트너가 상대를 힘으로 제압, 통제하려는 학대적 행위로 육체적, 성적, 정신적, 경제적 등 다방면에 걸쳐 상대를 위협하거나 학대하는 행위”이다.

가정폭력이 힘들고 복잡한 이유는 그 폭력이 서로 사랑하고 아껴주고 보호해주어야 하는 관계에서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가정폭력은 주위의 적절한 도움 없이는 나아지지 않는다. 그런데 가정폭력의 피해자는 외부의 도움받기를 꺼리거나 혹은 공포 안에 갇혀 도움 요청조차 할 수 없는 경우가 있다. 폭력을 당하며 사는 배우자는 주위 사람들로부터 종종 왜 학대받고 사느냐고 비난받거나 자신이 그 폭력을 자처했다는 비논리적 자책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 폭력적 관계를 폭로하고 떠나려는 순간, 수많은 질문을 자신에게 한다. 평생을 같이 하기로 한 배우자를 이렇게 떠나도 되는가? 다른 식구들 얼굴을 어떻게 볼까? 아이들에게는 뭐라고 이야기하나? 경제적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다른 사람들이 나를 보는 시선은 어떨 것인가? 등등의 많은 걱정과 생각들을 하면서 괴로워한다.


가정폭력에는 사이클이 있다. 첫 단계는 관계 안의 ‘힘든 분위기 고조’이다. 충돌과 말싸움이 생기면서 서로를 비난하고 질책, 질투하면서 언어폭력으로까지 이어지면서 상대를 협박하고 물건을 파괴하기도 한다. 두 번째는 심각한 폭력, 상해를 가하는 단계다. 이 단계에서 일어나는 폭력은 피해자에게 잊을 수 없는 신체적 정신적 상처를 남긴다.

폭력을 가한 파트너는 “나는 그저 베개로 몇 번 때렸을 뿐이에요”라고 자신의 폭력을 최소화하려하고 피해자는 “작은 딱딱한 쿠션으로 내 머리를 집중적으로 여러 번 때려 잠시 정신을 잃었어요”라고 묘사한다. 폭력의 가해자와 피해 배우자 각각이 다른 입장을 취한다. 가해자는 상대를 비난하면서 “너 때문에” “네가 그래서”라고 하면서 폭력을 정당화하려하고, 피해자는 그것을 비이성적으로 내면화하면서 자신을 자책하기도 한다.

세 번째는 허니문 단계이다. 폭력으로 에너지가 발산된 후, 화가 수그러지기 시작하면서 가해 배우자가 자신이 한 폭행을 후회하면서 상대 배우자가 자신을 떠나면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을 하게 된다. 그러면서 피해자에게 정성을 다해 사랑해준다. 이때 피해자는 “그래 이 사람의 본 모습이 이거지. 내가 이래서 결혼했는데, 내가 더 노력하고 잘하자”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이렇게 폭력의 사이클은 이어지고 폭력의 종류도 다양해지면서 강도 또한 서서히 강해진다.

B씨는 결혼한 지 6개월 된 신혼여성이었다. 남편의 근무시간이 늘어나면서 같이 보내는 시간이 줄어들어 그 이야기를 하던 중 남편이 피곤한데 잔소리한다고 주먹으로 상을 쳤다고 했다. 그 순간 B씨는 알지 못했던 남편의 모습에 많이 놀랐다고 했다. B씨는 놀란 자신을 보며 이 관계 안에서 자신을 어떻게 보호해야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후 세월이 지나 B씨는 상담소를 다시 찾았고 그때는 많이 지쳐 보였다. B씨는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 있었고, 많이 황폐해 있었다. B씨는 그동안 주기적으로 폭력이 있었고 점점 강도가 세지는 폭력으로 몸과 마음이 병들어있었다. 첫 미팅에 했던 가정폭력 피해자 치료/보호 프로그램에 대해 다시 설명했으나 B씨는 “이렇게까지 참아왔는데, 조금만 더 기다리면 바뀌지 않을까요?”했다. 피해자가 잘 빠지는 비합리적 자아반성/비판을 했고, 자신을 학대하는 가해자를 동정하고 이해하려고 하는 스톡홀름 증후군 증세를 보였다.

B씨의 동의하에 아이들을 보호하고 있는 친지의 도움을 받아 B씨는 아이들과 가정폭력피해 보호소로 거처를 옮겼다. 가정의 파괴는 이런 결정을 한 B씨가 한 것이 아니고 폭력으로 배우자를 학대한 사람한테 있다고 확인시켜드렸다. 가정폭력은 가족들 모두에게 깊은 상처를 남기는 심각한 사회문제다.

<유동숙 한미가정상담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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