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팔레스타인과 이승만 재평가

2024-05-24 (금) 여주영 뉴욕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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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영토갈등은 근세기만 보더라도 최소 100년 전쟁이다. 팔레스타인 분쟁의 씨앗을 뿌린 영국의 발포어 선언이 발표된 지도 100년 하고도 7년을 지나고 있기 때문이다.

‘발포어 선언(Balfour Declaration)’은 1917년 11월2일 영국 외상인 아서 발포어가 당시 전세계 유대인 커뮤니티를 대표하던 배론 로스차일드에게 팔레스타인 지역에 유대인들만을 위한 국가 건설을 지원하겠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낸 사건이다. 서구 열강 중 처음으로 영국이 팔레스타인 지역에 유대인들이 2,000년간 꿈꾸어왔던 이스라엘의 건국을 공식 지지한 실로 엄청난 사건이었다.

당시 영국은 유대인들 편을 드는 척했지만 전 세계를 뒤덮고 있던 세계 제1차 대전 중에 독일편에 서있던 오스만제국 내 아랍인 불만세력들의 반란을 물밑에서 도우면서 아랍인들에게도 팔레스타인 내 독립국을 약속하는 이중플레이를 한 것이다.


그러나 유대계는 전 세계 미디어를 장악하고 있었고, 발포어 선언만이 국제사회의 주된 포커스를 받게 되었다. 덕분에 1922년 7월24일에 UN의 전신이었던 국제연맹으로부터 이스라엘 국가수립과 관련한 당위성을 인정받았고, 영국은 팔레스타인 지역의 위임 통치를 합법적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이스라엘 건국 로드맵이 공식화되니 전 세계로부터 핍박당하던 유대인들의 팔레스타인지역 유입이 급물살을 탔다. 결국 1948년 5월14일에 영국의 위임통치는 종료되고 이스라엘 건국이 정식 선포되었다. 대한민국도 같은 해에 건국되었으니 사실 이스라엘과 한국의 운명은 같은 처지인 지도 모른다. 양국이 다 반쪽 국가였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약속대로 건국이 되었지만 곤란한 처지에 놓인 것은 영국. 아랍 국가를 약속대로 세워주려니 신생 이스라엘과의 외교 분쟁이 될 것은 뻔한 것이었다. 세계 제2차 대전이 끝나고 UN이 정식 국제기구로 활동을 시작하자 영국은 신나라 하면서 팔레스타인 문제를 떠넘겨버렸다. UN은 팔레스타인 지역에 이스라엘과 아랍세력의 공존을 위한 두개의 나라 건설을 제안했지만, 팔레스타인을 타민족인 유대인들과 나누자고 동의할 아랍인들은 없었다. 그 후 80년 가까이 팔레스타인 영토분쟁이 이어져온 것이다.

상당수 유대인들의 마음속에는 시온주의라는 꺼지지 않는 애국주의 불꽃이 있다. 다시 멸망하지 않고 강대국이 될 것이라는 자신들의 정체성을 담은 히브리어 성경의 예언 성취라고 믿는 것이다.

한인들도 한반도에서 남북이 또 다른 의미의 영토 갈등을 겪고 있다보니 팔레스타인 사태를 보는 시각이 남다를 수 있다. 발포어 선언의 패러독스를 보면서 이승만 건국대통령이 재평가 되는 형국이다.

100년 가까이 팔레스타인이라는 매우 협소한 땅덩어리에 같이 살고 있던 유대인들이 자신들만의 공화국을 수립하지 않았다면 지금 어떤 모습으로 공존하고 있을까. 만약 이승만 건국대통령이 이북의 김일성과 그의 동조자들의 선의만 철썩 같이 믿고만 있었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지금 북한 공산주의자들의 정치게임에 놀아나고 있지 않았을까.

앞으로 한국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최소한 좌우 이념대립을 떠나 건국에 성공한 이승만을 중립적으로 평가하는 것부터 제대로 해야 하지 않을까. 나라를 건국한다는 것을 쉽게 생각하는 요즘 사람들 보면 팔레스타인 사태를 좀 살펴봐 달라고 하고 싶다.

이승만의 공과 중에 가장 확연하게 큰 공은 미국과 외교줄다리기를 평생하면서 신생 국제기구인 UN을 이용해 한반도의 남쪽만이라도 개개인들이 공산주의의 폭정 속에 신음하지 않도록 살 수 있는 공간과 체제를 만들어낸 것이다.

요즘 이렇게 뚜렷이 실체적인 역사적 진실마저도 부정하는 사람들이 꽤 있는 것 같다. 그럼 주권 없이 신음하고 있는 북녘의 김씨 왕조나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최소한의 인류애마저 부정당하면서 고생하는 민간인들의 최근 사진들을 검토해보면 어떨까.

<여주영 뉴욕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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