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특별 칼럼] 섹스, 거짓말 그리고 인과응보

2024-05-20 (월) 제니퍼 루빈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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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 전문가들은 기업 장부 조작 혐의와 관련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형사재판에서 오랫동안 그의 ‘청부 해결사’ 역할을 담당했던 마이클 코언이 검찰 측의 ‘핵심 증인’이 될 것으로 판단했다. 물론 코헨의 증언이 검찰 측 공소사실을 입증하는데 큰 몫을 하겠지만 재판의 결과를 좌우할 ‘결정적 증언’은 두 명의 여성에게서 이미 나왔다. 트럼프는 종종 여성을 폄훼하고, 비하했으며 공개적으로 모욕을 주거나 비방하고, 억압했다. ‘여성 혐오론자’을 연상케 하는 그의 평소 언행을 지켜본 미국인들이라면 호프 힉스와 스토미 대니얼스의 증언에 쉽게 공감할 수 있었을 것이다.

트럼프의 최측근이었던 호프 힉스 전 백악관 공보국장의 증언은 검찰 측이 공소유지를 위해 필요로 하는 두 가지의 불가결한 범죄사실 구성요인을 제공했다. 첫째, 그녀는 2016년 ‘액세스 할리웃’ 테입이 불러일으킨 파문으로 위기를 맞은 트럼프 선거캠프의 혼란상을 생생하게 묘사했다. 곤혹스런 성 추문이 추가되는 것을 막기 위해 트럼프 진영은 서둘러 시한폭탄에 다름없는 상대 여성들의 입막음에 나서야 했다. 트럼프는 자신의 캠페인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입막음 돈’ 지급 의혹을 은폐해야 했고, 결국 이것이 중범죄에 해당하는 기업장부 조작과 선거자금법 위반 등의 혐의사실을 구성하는 동기로 작용했다.

둘째, 힉스는 입막음 돈을 은폐한 목적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알려 주었다. 포르노 스타인 대니얼스에게 돈이 지급됐다는 이야기가 수면 위로 떠오르자 “트럼프는 이 문제가 선거 직전에 불거지면 골치가 아프니 지금 처리해야 한다고 지시했다”는 게 힉스의 증언이다. 대니얼스에게 돈을 지급한 이유는 멜라니 트럼프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였다는 트럼프 측 변호인의 반론은 힉스의 증언으로 설득력을 잃었다. (트럼프 변호인은 막내아들 배런 트럼프를 출산한지 불과 몇 달 만에 남편이 포르노 여배우와 성관계를 맺었다는 근거 없는 의혹에 멜라니가 받을 충격을 막기 위해 부득이 입막음 돈을 지급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증언대에서 흘린 힉스의 눈물과 불편한 모습도 증언의 신뢰도를 높였다. 형사재판에서 자신의 전 상사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는데 따른 복잡한 감정을 그대로 드러냈기 때문이다.


힉스의 증언이 트럼프에게 충격을 주었다면 대니얼스의 증언 내용 및 그녀가 보여준 태도는 메가톤급 파괴력을 과시했다. 그녀의 가장 강력한 증언은 반대신문 중에 나왔다. 대니얼스의 충실한 대답과 솔직하고 재치있는 태도는 배심원들의 신뢰를 얻기에 충분했다. 전직 검사인 조인스 화이트 밴스는 “대니얼스의 증언은 트럼프가 그녀에게 입막음 돈을 지급하지 않았을 경우, 일반대중이 누군가로부터 들었을 바로 그 이야기를 정확하게 들려주었다”고 말했다. 그는 ‘액세스 할리웃’ 테입의 여진이 미처 가라앉기도 전에 충격적인 성 추문이 터지는 것을 막기 위해 트럼프는 기꺼이 거액의 대가를 지불하려 하지 않았겠느냐”고 반문하고 “틀림없이 그랬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재판의 모두진술에서 트럼프의 변호인은 대니얼스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겠다고 공언했기 때문에 그녀의 증언은 더없이 중요했다. 증인석에서 대니얼스가 한 말이 진실인지 거짓인지는 혐의의 본질과는 상관없지만, 트럼프는 처음부터 포르노 배우의 신뢰성을 공격 포인트로 삼을 것을 주문했고, 실제로 그의 변호인단은 그녀가 위증을 했다고 주장했다. 트럼프는 그녀를 주 공략대상으로 삼은 것을 후회할지 모른다. 대니얼스와 트럼프의 신뢰성 경합에서 배심원단은 거의 틀림없이 포르노 여배우의 손을 들어주었을 것이다. (트럼프가 증언할지 여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대니얼스가 확보한 배심원단의 신뢰와 변호인 측 증인 반대신문에서 검사들이 집중적으로 거론한 사안들을 감안하면 아마도 그는 증언대에 서기를 두려워할 것이다. 트럼프 변호인단이 그의 증언을 원치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 문제에 관한 법정증언만으론 부족했는지, 대니얼스는 코언이 대납한 입막음 돈을 되갚았다고 시인한 트럼프의 녹취발언을 재판부에 증거로 제출했다. (증언녹취 당시, 트럼프는 입막음 돈을 은폐할 방법을 마련한 뒤 코언에게 그가 대납한 돈을 전액 되돌려주었다고 사실상 시인한 바 있다.)

대니얼스는 트럼프와 성관계를 가졌다는 사실을 명백히 밝혔고, 배심원단은 그녀에게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반면 트럼프 변호인은 대니얼스와 피고인 사이의 관계를 올바로 전하지 않았다.)

“트럼프 재판”의 저자인 놈 아이젠은 필자에게 “대니얼스의 증언은 입막음 돈 지급이 지연된 속사정을 비롯, 코언의 법정진술을 뒷받침해주었다”고 말했다. 코언은 “대금 지급이 연기된 이유는 트럼프가 이 문제를 선거가 끝난 뒤로 미루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증언했다.

(“트럼프는 입막음 돈이 지급된 이후에 이같은 사실을 알았다고 시인했다. 입막음 돈 지급에 관여하지 않았다는 트럼프의 말을 믿지 않는다. 그를 대신해 일을 처리한 코언의 노력을 트럼프는 인정하지 않았다. 그는 성 추문이 선거 이전에 터지지 않는 편이 낫다고 말했다” 등등) 힉스의 증언이 뒤이어 나온 대니얼스의 증언과 연결되면서 성 추문 입막음 돈 지급이 어떻게 기업장부 조작과 선거법 위반 행위로 이어졌는지를 뚜렷하게 보여주었다.

다시 말해, 코언은 입막음 돈 지급이나 지급 목적을 입증하는데 없어서는 안 될 증인이 아니다. (물론 코언은 이번 재판의 본질인 트럼의 기업장부 조작 혐의를 입증하는데 필요한 결정적인 증언을 했다.)

요약하자면, 힉스와 대니얼스는 (트럼프에게 불리한 기사를 사전에 차단하는 이른바 ‘캐치 앤 킬’ 공작의 전모를 공개한 데이빗 페커와 함께) 코언이 증언석에서 해야 할 가장 어려운 일의 상당부분을 대신 해주었다. 코언이 아니라 그들이 트럼프를 꼼짝 못하게 묶어놓았다. 코언은 ‘마무리 투수’의 역할을 맡은 셈이다.

재판이 종료될 때까지 앞으로 수 주가 걸릴 것이다. 검찰 측과 변호인 측 모두 추가 증거제시와 최종진술을 남겨두고 있다. 그러나 두 여성의 증언이 나오기 이전에 비해 트럼프가 유죄평결을 받을 가능성은 한결 높아졌다. 트럼프가 유죄선고를 받는다면, 그 공로의 상당부분은 트럼프의 탈선행위를 가린 커튼을 활짝 열어젖힌 두 명의 솔직하고 용기있는 여성에게 돌아가야 한다.

<제니퍼 루빈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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