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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느끼며] 뉴욕에서 만난 김환기

2024-05-17 (금)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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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화가들은 미술의 중심지인 파리를 떠나 뉴욕으로 왔고 전쟁이 끝나자 강대국이 된 미국으로 전세계 화가들이 청운의 꿈을 품고 뉴욕으로 몰렸다.

한국의 화가들도 마찬가지, 1940년대 말 존 배, 1955년 김포, 1960년대에 김환기, 김병기, 백남준, 한용진, 최일단, 문미애, 민병옥 1970년대에 이 일, 김정향, 임충섭, 김차섭, 황규백, 김웅, 한규남, 최분자 1980년대에 변종곤, 이승, 이수임, 강익중, 최성호, 정찬승 등이 뉴욕에 정착했다. 초창기에 온 화가들은 대부분 작고했고 생존 화가들은 세계화단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현재, 뉴욕한인화가 1세대인 김환기특별전(Whanki in New York)이 뉴욕한국문화원 신청사 개관기념 특별전으로 열리고 있다. 올해는 1974년 7월 뉴욕에서 생을 마감한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 수화 김환기 50주년이기도 하다. 김환기(1913~1974)의 61년 삶을 도쿄시대(1933~1937), 서울시대(1937~1956), 파리시대(1956~1959). 뉴욕시대(1963~1974)로 나눠볼 때 뉴욕시대에 작품 완성도가 가장 높고 대표적인 전면점화가 탄생했다.


1층 로비에서는 LG전자의 디지털 작품화한 김환기의 작품이 상영되고 윗층 전시장 입구에 작가의 대형 사진을 시작으로 전면점화, 미공개 드로잉, 일기, 메모, 편지 등 150여 점이 전시되고 있다. 전시회 자체가 소박하고 단아하며 진솔했던 그의 뉴욕 생활을 보는 듯 하다.

이번 전시회에서 아쉬웠던 것은 대형 작품 한 점 정도는 있었으면 했다. 수년 전 리움 미술관에서 본 ‘하늘과 땅’(24-1 X-73 #320, 1973년작)은 화면 전체를 가득 채운 다양한 파란 점들이 신비하고도 숭고한 심연의 우주를 보여주었고 오랫동안 그 앞에 머물렀던 기억이 난다. 이렇게 대형작품 하나가 주는 감동은 깊다.

아니면 ‘달항아리’ 그림이 있었더라면 했다. 현재 메트 뮤지엄에서 한국관 25주년기념전으로 유명화가들 작품이 전시 중인데 실제의 달항아리와 김환기의 ‘달항아리’가 나란히 전시되어 한국미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김환기는 생전에 환한 달항아리를 좋아해 조선백자 중 ‘달항아리’ 이름을 처음 붙인 것으로 알려진다.

그리고 절대적인 반려자였던 아내 김향안(1916~2004)의 사진 한 장이 작게라도 있었으면 했다. 김향안의 본명은 변동림, ‘오감도’, ‘날개’ 등을 쓴 시인 이상의 부인이었다. 김환기는 조혼하여 딸 셋을 두고 아내와 헤어졌고 변동림도 사별했다.

재혼을 양가가 결사반대하자 동림은 변씨 성을 버렸고 김환기의 아호인 향안을 택해 아예 이름을 ‘김향안’으로 바꿔버렸다. 남편 김환기에는 말할 수 없이 든든한 아군이자 내조자로 집안일, 통역, 백화점 점원으로 일하면서 하루 열시간씩 김환기가 그림에만 신경 쓸 수 있게 했다.

맨하탄 브로드웨이 73가에 김환기 부부가 살던 라커펠러 재단 소유 예술가 아파트가 있다. 72가 전철역에서 가까워 쉽게 찾을 수 있다. 그곳은 여전히 번화하다. 이곳 스튜디오 1층에 작업실과 생활공간이 있었다. 화폭에 푸른 점, 오렌지 점, 붉은 점, 초록점, 큰점, 작은 점 등을 신들린 듯 찍어가는 화가가 보인다. 그는 심연의 바다, 광활한 우주의 이야기를 들려주고자 한다.

그렇다, 김환기 작품을 보면서 천문학적인 작품가를 생각하지 말고 일기, 작품 메모, 편지를 꼼꼼히 읽어보자(이번 전시회의 큰 장점), ‘어떤 과정을 거쳐 점으로 그리게 됐는지’ 작품이해는 물론 기법 변화, 작품에 대한 고민 등을 보면 그를 더욱 잘 알 수 있다.

전시된 ‘Letter-1964’가 있다. 김환기는 1963년 10월 브라질 상파울로 비엔날레에 갔다가 10월20일 뉴욕에 도착했고 1964년 6월에 김향안이 미국에 도착했다. 그 사이에 ‘향안(鄕岸)에게’ 보낸 편지이다.

“향안이 오면 장에도 내가 가고 식사 준비, 방 치우는 것도 내가 해주어야, 이런 생각이야. 아무리 시설이 잘 되어있는 뉴욕이라 할지라도 참 괴롭고 피로한 일이라는 것을 몸소 알았어...지금 뉴욕은 바람이 불고 추워요. 그러나 봄이여요....그럼 그리운 우리 향안 안녕! ”
더이상 작가의 마음을 말해 무엇하랴. 6월13일까지 뉴욕한국문화원에서 김환기특별전이 열린다.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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