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군은 군인으로서 가장 명예스러운 계급이다. 어깨에 별을 다는 장군의 자리는 아무에게나 주어지지 않는다. 극소수의 선택 받은 군인들에게만 주어지는 특권이다. 그런 만큼 장군이라는 자리에는 그런 특권과 명예에 걸 맞는 막중한 의무와 책임감이 요구된다.
각국 장성들 가운데 보통 가장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는 것은 미군 장성들이다. 높은 도덕성과 책임을 지는 자세 때문이다. 미군 지휘관들, 특히 장군들은 명예의식이 강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들은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어도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올바르게 하는 것”을 명예라고 여긴다. 이렇듯 개인적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이지 않고 양심에 비춰 당당하게 행동하는 것이 군인의 명예다.
여러 해 전 작고한 존 매케인 상원의원의 아버지로 해군제독이었던 시니어 매케인도 바로 그런 장군들 가운데 하나였다. 베트남 전쟁에 해군 조종사로 참전했던 아들 매케인 상원의원이 포로가 된 후 그의 아버지가 해군제독인 것을 파악한 북베트남군은 그를 협상 카드로 사용하려 석방을 제의했지만 아버지는 “먼저 잡힌 포로를 풀어주라”며 이를 단호히 거절했다.
장군은 자신에게 주어진 명예를 목숨처럼 여기면서 “공은 부하에게 돌리고 책임은 나에게”라는 덕목을 실천해야 하는 자리다. 하지만 대한민국 장군들에게서는 이런 ‘명예의식’을 찾아보기 힘들고, 자리에 부여된 특권만을 행사하고 향유하려는 ‘계급의식’이 두드러져 보이는 경우가 많다. 모든 장군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말이다.
지속적인 갑질로 부하들을 괴롭히는 장군들에 관한 뉴스는 이런 비뚤어진 계급의식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준다. 또 기강 문제나 경계 실패가 터져도 대부분 하급 간부들에게만 불똥이 튈 뿐 책임지겠다고 스스로 나서는 장군들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리고 지금 대한민국을 뒤흔들고 있는 해병대 ‘채 상병 순직 사건’을 둘러싼 논란은 이런 군의 실상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지난해 7월19일 수해로 인한 실종자 수색 현장에 투입됐던 해병대 1사단 소속 채 상병은 급류에 휩쓸려 떠내려간 후 사망했다. 안전조치가 미흡한 상태에서 투입됐던 채 상병 죽음의 책임을 가리기 위한 해병대 수사단 수사를 통해 해병대 1사단장과 산하 대대장 등 6명이 처벌대상으로 확정됐다.
그런데 당시 이종섭 국방장관이 결재까지 했던 수사보고서가 다음 날 돌연 취소됐다. 그러면서 사단장 등 4명이 처벌 대상에서 빠졌다. 대통령실에서 전화가 걸려온 후 장관 결재가 취소된 정황이 드러나면서 외압의혹으로 급속히 확산됐다.
의혹의 중심에 서 있는 전·현직 장성은 3명. 육군 3성 장군 출신인 당시 국방부 장관과 해병대 사령관 그리고 해병대 사단장이다. 이들은 외압 여부와 수색 작전 등 사태의 전말을 알고 있는 당사자들이다. 외압이 있었는지에 대해 진실을 알고 있을 이종섭 전 장관과 해병대 사령관은 현재까지 묵묵부답이다.
해병대 1사단장은 자신에게 당시 수색작전 권한이 없었으며 지시도 내리지 않았다고 계속 발뺌을 하고 있다. 하지만 그가 직접 수색 지시를 명령했고 문건에 서명까지 했던 증거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는 상황이다. 언론을 피해 다니는 그의 모습에서는 장군으로서의 당당함을 찾아 볼 수 없어 처연할 정도다.
명예라는 가치를 목숨처럼 여기는 지휘관과, 그런 지휘관을 따르고 있다는 자부심으로 똘똘 뭉친 부하들로 이뤄진 군대라야 강군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전직 국방장관과 해병대 장군들을 보고 있노라면 과연 부하들이 그런 자부심을 가질 수 있을 런지 의문이다. 책임지지 않는 지휘관이 이끄는 군대는 목숨 걸고 싸우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