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폭력정치의 야만성

2024-05-08 (수) 김용현 한민족평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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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총선에서 한국의 민심은 윤석열 정권을 무섭게 심판했다. 평소 윤석열 정권을 비호하기에 급급했던 보수언론들마저 높은 투표율을 통한 민의 표출 분위기는 가히 시민 항쟁의 수준이었다고 혀를 찬다. 지난 2년 동안 윤석열 정권은 민생과 경제, 국민의 생명, 외교, 인사에 철저하게 바닥 점수를 보여왔다. 그러니 국민들로부터 외면당한 것은 너무나 당연한 사필귀정이다.

무능과 무지보다 국민을 더욱 분노케 한 것은 오만과 불통이었는데 불통 끝에 오는 것은 으레 ‘격노’였고 정치적 폭력뿐이었다. 정치적 폭력은 상대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며 ‘실정(失政)과 무식함의 고백’이다. 그런데 정치적 폭력은 대부분 그 끝이 비극이다. 박정희 대통령이나 전두환의 말년을 보더라도 폭력으로 정치를 하겠다는 어리석음은 버려야했다.

지금은 사이가 벌어졌다지만 한동훈 법무장관을 여당의 비상대책위원장으로 보낸 것도 큰 패착이었다. 국민이나 상대 당을 범죄자로만 인식하는 검사 특유의 선민의식은 윤석열 대통령보다 더 하면 더 했지 부족하지가 않았다. 그는 정치인으로서 내공은 물론 표현 능력도 전혀 없음이 드러났다. 총선 결과는 윤 정권에 이어 검찰 후계자에 대한 심판도 끝난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석열 대통령이 남은 기간에도 전혀 국정기조를 변화시킬 것 같지 않은 그 야만성에 국민들은 절망한다. 지난 달 29일 영수회담을 열어 국민의 소리를 듣겠다던 윤 대통령은 국회를 통과한 ‘채상병 사건 특검법’에 또 거부권 행사를 예고했다. 변하지 않기로는 국민의 힘도 마찬가지다. 그러자 국민들은 다시 선거가 아닌 다른 헌법적 권리 행사에 나서려하고 있다.

민주사회의 다양성을 존중하며 국가를 발전시켜 나가자면 갈등 해결을 위한 경륜과 정치 철학이 있어야 한다. 애초에 그런 식견이나 능력이 없으면 학습이라도 했어야 하는데 불행하게도 윤 대통령은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는 오래된 속설이나 확인시켜주고 말았다. 그러나 총선에서 대승을 거둔 민주당은 당내 일방주의와 강경투쟁 못지않게 수권정당으로서의 포용력도 보여야 한다.

윤석열 2년 동안 ‘국가는 무엇인가?’라는 점에 강한 의문을 던졌다. 자유와 민주주의의 개념을 알기나 하는지 그는 때만 되면 자유를 말하고 다녔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한국의 민주주의, 그 중에서도 언론 자유는 만신창이 되었으며 신자유주의가 부자 편중 정책으로 사회적 약자의 양산, 불평등과 갈등의 악순환을 가져오는 결과에 전혀 대비를 하지 못했다.

대외정책에서도 폭력주의는 배격되어야 한다. 유능제강(柔能制剛)이라고, 외교에서 하루속히 유연성과 실용성을 회복해야하며 그 출발점은 대북정책이어야 한다. 이는 총선 결과 평화를 갈망하는 국민들의 정당한 요구다.

영국의 역사학자 에릭 홉스 봄은 저서 ‘폭력의 시대’에서 신자유주의의 세계화에 대한 부작용과 냉전 이후 미국의 민주당 정권이 인권보호를 명분 삼아 국제분쟁과 군비를 확장해가고 있는 정책을 비판했다. 오는 11월 미국 대선에서는 대학가에 번지는 반전 시위가 큰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우리 모두는 지구촌 어디에서나 폭력 정치의 야만성에서 벗어날 수 있어야 한다.

<김용현 한민족평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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