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손주를 가져보는 행운

2024-05-07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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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면 ‘나이’를 의식하게 되는 계기들이 있다. 평소에는 아직 한창인 듯 살지만 불현 듯 “내가 늙었구나” 깨닫게 되는 순간들이 온다. 그중 확실한 것이 손주의 탄생. 자신을 향한 호칭이 갑자기 ‘할아버지’ ‘할머니’로 바뀌면서 늙음이라는 현실을 피할 수 없게 된다. 자녀가 일찍 결혼하고 출산하면 50 즈음에도 조부모가 될 수도 있는데, 이 경우 특히 난감해 하는 것은 여성들이다. 외모는 젊디젊은 데 ‘할머니라니~’ 호칭에 적응이 안돼서 한동안 어려움을 겪는다.

그런데 이런 젊은 조부모들이 점점 희귀해지고 있다. 나이 70이 넘어도 조부모가 되지 못하는 노년층이 많아지고 있다. 젊은이들이 결혼을 늦추고, 결혼을 해도 출산을 늦추거나 아예 안하는 케이스들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1970년 미국에서 보통의 여성들의 초산 나이는 21세였다. 그로부터 반세기 지난 2022년 초산산모들의 나이는 보통 27세를 약간 넘었다. 미국 역사상 초산 연령으로는 최고기록이다.


초산이 늦어지는 현상은 지난 수십년 진행되어 왔다. 10대나 20대 초반 출산은 줄어들고, 보다 나이든 집단의 출산은 늘어나는 추세이다. 2022년의 경우, 7년 연속으로 30대 초반 여성 출산율이 20대 후반 여성 출산율에 비해 높았다.

보다 눈에 띄는 현상은 마흔 넘은 여성들의 출산. 물론 전체로 보면 적은 비율이지만 2021년- 2022년 1년 동안, 40-44세 여성 출산은 6%, 45세 넘은 여성 출산은 12%가 늘었다. 이런 변화는 일선 산부인과 의사들이 제일 잘 느끼는 일, 50대 임신부를 봐도 의사들은 놀라지 않는다고 한다. 과거 ‘할머니’가 되었을 여성들이 지금은 ‘엄마’가 되는 시대이다.

이 모든 변화의 토대는 1960년대 등장한 피임약. 여성들이 임신과 출산을 조정할 수 있게 되면서 아이 갖기를 뒤로 미루는 게 보편화했다. 이유는 다양하다. 아이 하나 양육하는 데 드는 비용이 엄청나다보니 현실적으로 어려워서 임신을 미루기도 하고, 여성들이 결혼보다 교육과 경력을 우선시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교육 다 마치고, 원하는 직업 갖고 난 후 결혼해 안정된 상태에서 엄마가 되려는 것이 대세이다.

과거에는 일정 나이 되면 결혼하고 아이 낳아 키우는 것이 삶의 정석처럼 되었지만 지금은 개개인의 선택으로 인정되는 분위기 또한 한몫을 하고 있다. “결혼, 자녀양육… 그게 내가 정말로 원하는 건가?” - 지금 세대는 묻고 결정한다. 그렇게 결혼도 출산도 미뤄진다.

그렇다고 요즘 세대가 자녀를 원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2023년 연구를 보면 무자녀 보다 자녀를 원한다는 응답이 훨씬 일반적이고, 이들 대부분은 둘 이상의 자녀를 원한다. 그런데 문제는 출산을 마냥 미룰 수 없다는 것. 미룰수록 아기 갖기는 어려워진다.

미국산부인과학회에 따르면 여성의 생식능력은 30세 생일 지나면서 점점 감소해 35살이 되면 뚝 떨어지고, 45세 되면 자연 임신은 거의 불가능해진다. 그래서 요즘 붐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 난자냉동과 시험관/체외 수정이다. 특히 고소득 전문직 여성들은 30대 중반 난자를 냉동해두고 나중에 시험관 수정으로 임신하는 것이 거의 일반화했다. 미국에서 이런 테크놀로지를 통해 태어난 아기는 2021년 기준, 거의 10만명. 하지만 IVF 사이클 한번 시도 비용이 1만 달러가 훨씬 넘고, 보통 한번에 성공하기 어렵다 보니 누구나 시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5월은 가정의 달인데 부모와 자녀로 이뤄진 전통적 가정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그만큼 손주 갖는 일도 어려워지고 있다. 마흔 넘도록 결혼 안하는 자녀, 아이 안 갖는 자녀를 보며 “내 생전에 손주를 보게 될까” 답답해하는 노년층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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