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특별칼럼] 대중 유세 없는 2024 대선 캠페인

2024-05-06 (월) 짐 제라티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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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는 할 말이 많다. 그는 요즘 매주 4일을 맨해튼 형사법정 피고석에 앉아 시간을 보낸다. 업무기록 조작과 관련한 34개 중범죄혐의로 형사재판에 회부됐기 때문이다. 2024 공화당 대통령후보로 사실상 확정된 트럼프는 “지금 이 시간에 나는 재판정이 아니라 조지아나 플로리다 혹은 노스캐롤라이나에서 유세를 벌이고 있어야 한다”며 자신을 법정에 붙잡아두는 것은 “터무니없이 불공평한 일”이라고 푸념한다.

그러나 재판 휴정일인 지난주 수요일, 트럼프는 자신이 소유한 뉴저지주 베드민스터의 골프장에서 한가로이 휴식을 취했다. 뉴저지는 2024 대선의 경합 예상 주로 꼽히는 펜실베이니아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다.

우리는 지금 대중유세 없는 2024 캠페인을 지켜보고 있다. 트럼프는 대부분의 시간을 법정에서 보내고, 바이든 대통령은 가벼운 유세 일정을 고수하며 비공개 기부금 모금행사에 주력한다. 다른 대통령 선거의 해와 달리 2024 대선에서 맞붙는 현직 대통령과 전임 대통령은 굳이 고된 선거전을 치를 필요가 없다. 이들은 이미 유권자들에게 알려질만큼 알려진 정치인이다: 미국인들은 그들을 속속들이 알고 있다. 두 후보가운데 누구에게 표를 줄지 결정하지 못한 ‘부동층’ 유권자는 이들을 잘 알지 못해 선택을 망설이는게 아니라 두 후보 모두 마음에 들지 않아 결정을 유보하고 있을 뿐이다.


트럼프는 공화당 전당대회가 열리는 7월 중반까지, 바이든은 8월 중반까지 가벼운 유세 일정을 이어갈 것이다. 전당대회 이후 두 후보의 행군속도가 빨라질 수밖에 없겠지만, 그 때에도 불꽃 튀는 선거전을 기대하기 힘들다.

사실, 대중집회는 이들 두 후보에게 실수를 범할 기회를 제공할 뿐이니 피하는 게 상책이다. 바이든은 쇠약하고 건망증이 심한 노인같은 인상을 주고, 트럼프는 툭하면 성질을 부리는 분노조절장애자처럼 보인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지금부터 11월의 투표일 전까지 카메라 앞에 서거나 대중에 노출되는 시간이 짧은 후보가 백악관에 입성할 가능성이 높다. 이들이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낼 때마다 유권자들은 그들이 내려야하는 못마땅한 선택에 관해 생각하게 될 것이다.

아이스크림 가게에 들린 바이든의 이야기 가운데 그에 대한 당신의 생각을 극적으로 바꾸어놓을 만큼 신선한 아이디어가 있을까? MAGA 집회에서 트럼프가 외치는 고함을 들으며 “내가 저 사람을 완전히 잘못 판단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될까?

올 가을 대선에서 우리는 인기 없는 백악관의 현 입주자와 그가 밀어낸 인기 없는 전 입주자 사이의 재대결을 지켜보아야한다. 최근 NBC 뉴스의 여론조사에서 2024 대선에 큰 관심을 갖고 있다고 밝힌 유권자들의 비중은 거의 20년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전혀 놀라울 게 없는 결과다. 대선 일까지 아직도 6개월가량 남아있다. 그러나 지금부터 11월의 투표일 사이에 예정된 중요한 선거 이벤트는 거의 없다. 트럼프의 러닝메이트 선택이 올해 대선과 관련해 우리가 궁금해 하는 두어가지 관심사 가운데 하나다. 풀뿌리 민주당 지지자들 사이에 들불처럼 번지는 반 이스라엘 정서를 감안하면 시카고에서 열리는 민주당 전당대회는 베트남전 반전시위로 아수라장이 되었던 1968년 전당대회의 재판이 될 수 있다.

이 둘 이외에 우리의 궁금증을 자극하는 다른 대선 이벤트가 있을까? 대통령후보 토론회? 그러나 현재로선 토론회가 정말 열릴지조차 불투명하다. 지난주 바이든은 시리우스 XM 라디오 호스트인 하워드 스턴에게 “트럼프와 기꺼이 토론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부 민주당 지지자들은 양자 토론에 반대한다. “대통령이 88건의 중범죄 혐의로 네 차례 기소된 트럼프와 같은 무대에 서는 것만으로도 그의 격을 높여준다”는 얘기다.

(바이든에게 불리한 뉴스도 있다. 백악관 기자단과의 대좌를 한사코 기피한 바이든 대통령이 스턴뿐 아니라 ‘스마트레스’로 불리는 팟캐스트에 배우-코미디언들과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마주앉아 가벼운 대담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최근 몇주 동안 뉴욕에서 진행중인 트럼프의 형사재판을 다룬 보도가 대선 캠페인 기사를 묻어버렸고, 여론조사에서 나타난 바이든의 지지율은 좀처럼 개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4월8일^15일에 치러진 블룸버그 뉴스-모닝 컨설트 여론조사에 따르면 경합주에서 바이든의 지지율이 소폭 하락했고, 4월18일^23일에 실시된 전국규모의 CNN 여론조사에서는 트럼프가 바이든을 49%-43%로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


CNN 여론조사는 여러 모로 바이든을 불안하게 만든다. “무소속 후보인 로버트 F. 케네디 Jr.와 코넷 웨스트, 녹색당의 질 스타인을 포함한 가상대결에서 트럼프는 42%-33%로 바이든에 앞섰고, 케네디 16%, 웨스트 4%, 스타인 3%의 순으로 나타났다. 케네디는 바이든과 트럼프의 양자대결 수치에서 각각 13%씩을 빼갔다.”

하지만 바이든은 이번 대선을 도널드 트럼프에 대한 국민투표로 몰아가며 앞으로 몇 개월 동안 상당한 이점을 누릴 수 있다. 여기에 맞서 트럼프 역시 바이든 심판론으로 대응할 것이다. 공화당 대통령후보로 사실상 확정된 트럼프는 국경위기와 물가상승 등의 핵심 이슈를 간헐적으로 꺼내든다. 그러나 우리는 그가 정말 말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알고 있다. 트럼프는 자신이 얼마나 부당한 대우를 받았는지, 2020 대선의 진짜 승자가 누구인지 말하고 싶어한다. 한마디로 유권자들의 삶에 영향을 줄 정책 아이디어를 제외한 자신의 이야기만 하려 든다.

그래도 MAGA 지지자들은 트럼프에게 열광한다. 반면 좌, 우와 중도를 막론하고 많은 정치 평론가들은 트럼프를 장기간 유세에 나서지 못하게 만들지도 모를 전임 대통령의 사법리스크를 경고한다. 만약 2024 대선이 민주당의 승리로 끝난다면 공화당은 약체인 현직 대통령을 무너뜨릴 숱한 호기를 날려 보냈다는 사실에 땅을 치고 후회하게 될 것이다.

이번 선거에서 누가 승자가 되건 간에 지금처럼 나이 든 두 후보가 대중접촉을 최소화하면서 유세 없는 캠페인을 이어간다면 투표로 결정되는 것은 유권자들의 소망이 아닐 것이다.

<짐 제라티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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