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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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어져가는 것들

2024-05-04 (토) 이규성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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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흘러가면서 우리 주변의 모든 것들은 변화하고 있으며 그중 일부는 나에게서 멀어져 가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가 맞이하는 변화는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불가피한 것이어서 때로는 미묘한 감정의 복합체가 되곤 한다. 이러한 감정을 느낄 때는 과거의 추억에 잠겨있는 것보다 현재의 순간을 즐기며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고 그 추억을 소중히 여기며 삶을 계속해 나가야한다.

모든 것이 항상 내 곁에 머물러있을 수는 없는 법, 그래서 가족이나 친구들과 함께 했던 시간이 남긴 추억과 경험은 소중한 마음의 자산이 되어 나를 응원해주고 인내와 용기를 주는 것 같다. 그리고 그들이 떠나간 자리에는 새로운 인연들이 찾아올 것이며, 더 나은 미래와 가능성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멀어져가는 것들을 뒤돌아보기보다 앞으로 나아가며 새로운 길을 모험하고 새로운 인연들을 만나기로 다짐하면서 섭섭하고 아쉬운 마음을 다독인다.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던 일, 또 어렸을 때 외식하고 집으로 돌아오던 소중했던 추억도 이젠 점점 내 곁에서 멀어져가고 녀석들이 뛰놀던 빈방을 쳐다보면 마치 새들이 떠나간 빈 둥지를 보는 것 같은 허전함과 아련한 추억 속에서 한동안 헤매기 마련이다. 그 빈자리는 이제 예쁜 손녀, 손자들이 차지하고 있어서 이들과 함께 새로운 추억거리를 만들어가는 중 이다.


어릴 적 친구들과의 추억도 이젠 멀어져가고 있다. 같이 자라고 놀면서 많은 추억을 만들었고, 그들과 함께 보낸 시간이 지금의 나를 있게 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던 추억의 순간들을 회상하면서 자꾸만 멀어져가는 친구들의 모습을 붙잡고 싶고 이름만 부르면 어디선가 곧 뛰어나올 것 같은 착각마저 하게 된다.

매년 3월이 되면 군에 입대하던 날이 생각난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서울역 2등 대합실에서 부모님과 친척 아주머니의 전송을 받으며 떠나던 날 무표정한 얼굴로 “잘 다녀오너라” 한 마디로 당신의 사랑을 표하셨던 아버지, 그 곁에서 말없이 나를 쳐다보시며 눈물만 훔치시던 어머니 그리고 “너는 여자 친구도 없냐?” 물으면서 등을 두드려주시던 아주머니도 이젠 다시 뵐 수 없는 세상으로 떠난 지가 벌써 수십 년이 지나고 보니 이제는 그분들의 모습마저도 기억 속에서 아른거리기만 한다.

군에서 전우애로 맺은 동기생들과의 인연은 5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끈끈하게 이어져오고 있다. 청년 장교 시절, 세상이 온통 내 것이나 되는 것처럼 헤집고 다니먀 두려움이 없었던 그 야망의 시절도, 그 시절의 추억도 한둘 씩 내 곁에서 멀어져가고 있다.

내 결혼식에 먼 길을 마다 않고 달려와 온 동네가 떠들썩하게 함잽이 노릇을 하면서 축하해주었던 친구의 부고를 들었을 때 녀석의 사진을 들여다보면서 함께 했던 추억의 시간을 되새겨보며 앨범에 남아있는 녀석에게 조용히 작별 인사를 하기도 했다.

우리네 삶은 희로애락의 연속이며 변화와 회복의 과정이다. 내 곁에서 멀어져가는 과거의 추억들은 우리가 살아온 증거이자 흔적이며 우리를 미래로 이끄는 길잡이가 되어주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과거에 사로잡히지 않고, 현재를 살아가며 미래를 긍정적인 안목으로 내다보며 끊임없는 변화의 과정에서 새로운 경험과 배움을 찾아가는 지혜야말로 바람직하지 않은가 생각한다.

<이규성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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