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동네 상권이 중요한 이유

2024-05-02 (목) 조환동 편집기획국장·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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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 사는 글렌데일에는 ‘케네스 빌리지’라는 작은 동네 샤핑센터가 있다.

글렌데일에서만 20년 넘게 살았는데 이곳의 존재를 모르고 있다가 수년전 운전을 하면서 우연히 발견하게 됐다. 주택가 도로를 가다가면 갑자기 1블럭 양쪽으로 10개 정도 조그만 가게들이 영업하고 있는 것이 너무 신기했다. 사실 ‘샤핑센터’라고 부르기도 민망할 정도다.

프랑스 디저트 카페, 미니 마켓, 커피숍, 아이스크림 가게, 미용실, 옷가게, 식당, 보석상 등 영세 업소들로 구성돼 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 케네스 빌리지가 글렌데일 주민들에게는 오랜 기간 ‘숨은 보석’이었다.

주중 저녁이나 주말이 되면 인근 주택가 주민들이 자녀들과 나와서 산책도 하고 식사도 하고 커피도 즐기면서 제법 붐빈다. 기자도 이제는 주말에 아내와 함께 종종 들러 커피도 마시면서 오붓한 시간을 보낸다.

이곳 업소들은 모두 개인이 운영하는 자영업체들로 수십 년 역사를 가진 곳도 있다. 대형 업소나 프랜차이즈 업소는 하나도 없다.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우연히 만나 대화를 하게 된 한 백인 노인 부부는 “아마존에서 온라인으로 주문할 수 있고 또 대형 샤핑몰이 곳곳에 널려 있지만 여기가 좋아 20여년 넘게 샤핑도 하고 식사를 한다”면서 “이곳에선 가게 주인들과 직접 거래를 하고 대화를 하면서 대형 샤핑몰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서비스와 정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들은 이어 “우리 지역 주민들이 애용하고 지켜주지 않으면 이곳 가게들이 어떻게 생존하겠느냐”고 반문하면서 “코로나19 사태 이후 업소들이 더 힘들어하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사실 남가주 곳곳, 또 전국에는 케네스 빌리지와 같은 동네상권이 지역 주민들의 애용 속에 꿋꿋이 버티고 있어 미국인들의 동네 상가에 대한 애착을 느낄 수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연방정부 조달계약의 23%를 스몰 비즈니스와 소수계 비즈니스에 몰아준다는 목표를 세웠는데 2023회계연도에는 전체의 28.4%로 목표를 초과했고 계약 금액은 1,786억달러에 달했다고 최근 발표했다.

코로나19 사태로 전국적으로 많은 영세 업소들이 문을 닫았지만 미국에는 여전히 3,300만개에 달하는 스몰 비즈니스들이 영업하고 있으며 이들은 미국 경제를 지탱하는 핵심 버팀목이 되고 있다. 또한 스몰 비즈니스는 매년 미국에서 신규 창출되는 민간부분 일자리의 3분의 2를 책임지고 있다.


스몰 비즈니스는 정부와 공공기관을 제외하고 미국 전체 근로자의 49%를 고용하고 있다는 통계가 나와 있다. 대기업의 69%는 스몰 비즈니스로 시작했다는 재미있는 통계도 있다.

그러고 보면 한인사회 절대 다수 업소들도 스몰 비즈니스들이다.

그래서 연방 중소기업청(SBA)은 봄과 가을, 1년에 두 번을 ‘전국 스몰 비즈니스 위크’(National Small Business Week)로 선포하고 1주일간 온·오프라인으로 다양한 행사를 개최한다. 우수한 스몰 비스니스들을 발굴해 표창도 한다.

또한 스몰 비즈니스 위크로 지정된 그 주의 토요일은 ‘스몰 비즈니스 새터데이’로 지정하면서 이날 하루라도 동네 가게와 상권을 이용하자고 호소한다.

올해 봄에는 전국 스몰 비즈니스 위크가 지난 4월 28일 시작돼 오는 5월4일까지 이어지고 오는 4일이 스몰 비즈니스 새터데이이다.

대통령도 매년 스몰 비즈니스 새터데이에는 백악관 인근 상점에 들러 물건을 사면서 상징적으로 동네 상권 보호에 동참하고 있다. 아이스크림을 너무나 좋아하는 조 바이든 대통령이 올해에는 백악관 인근 아이스크림 가게에 들르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글렌데일까지 가지 않고 한인타운만 봐도 우리 형제자매들이 오늘도 힘겹게 영세 가게들을 운영하고 있다. 기자도 아내와 함께 수년간 스몰 비즈니스를 운영해봤지만 캘리포니아 주는 전국에서 렌트와 인건비, 종업원 상해보험 등 각종 사업경비가 전국에서 가장 높은 곳이다. 그만큼 사업을 하기 힘든 곳이 가주이기도 하다.

요즘 한인 사업주들을 만나보면 10명 중 8, 9명은 사업하기가 너무 힘들다고 호소한다. 매출이 늘기는커녕 줄고 있는데 각종 사업비용은 오르기만 하기 때문이다.

스몰 비즈니스 없이는 미국 경제도, 한인 경제도 존재하지 않는다. 긴 불황의 터널을 지나고 있는 한인 스몰 비즈니스를 살리는 방법은 한인들이 앞장서 한인 업소와 지역상권을 애용하는 것이다.

오는 토요일 ‘스몰 비즈니스 새터데이’에는 모처럼 가족들과 함께 한인타운이나 지역 상권의 스몰 비즈니스들을 애용해보자. 대형 업소에서는 볼 수 없는 정과 서비스를 느끼고 좋은 물건들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조환동 편집기획국장·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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