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미국은 지금…] LA 폭동 32주기에…

2024-04-30 (화) 김동찬/시민참여센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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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년 4.29 LA 폭동 32년이 흘렀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강산이 3번이나 변했다.
80년 대부터 본격적으로 미국 이민을 한지 10년만에 미주 한인들은 호된 신고식을 치렀다.

사건의 발단은 고속도로에서 과속으로 잡힌 흑인 운전자 로드니 킹을 경찰들이 무참하게 두르려 패는 장면을 누군가 찍어서 방송국에 제공하였는데, 배심원들이 경찰을 한명만 재심 나머진 다 무혐의 처분하자 흑인 커뮤니티가 시위를 하면서 폭동이 된 것이다.

사실 한인들과 전혀 상관없는 사건이었지만 1년 전 두순자 여인이 자신의 가게에서 다툼으로 폭행을 당하자 흑인 소녀를 쏘아 사망케한 사건이 흑인들의 한인에 대한 감정을 갖게 한 것도 한몫을 했다.


폭동 후 모든 것이 사라진 현장을 넋놓고 바라보던 한인들, 원망하듯 하늘을 보고 있던 한인들, 땅을 치고 통곡을 하고 있는 한인들, 우리들에게 이런 왜 일이 일어났고 공권력은 왜 우리를 지켜주지 않았는가? 우리는 단지 평화를 원할 뿐 더이상 파괴와 약탈은 안된다라고 수만명의 LA 한인들이 외쳤다.

LA 폭동은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미국에 살고 있던 한인들에게 미국이 어떤 사회인지를 확실하게 각인시켜 준 미주 한인 이민사의 분기점(Turning Point)이었다. 그때 까지의 아메리칸 드림은 열심히 일해서, 좋은 집, 좋은 차, 좋은 학교에 아이들을 보내는 것이었다.

그러나 폭동이 일어나자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열심히 살고 있던 한인들은 피 땀으로 일군 재산을 잃었는데 공권력이 전혀 보호해 주지 않았다. 거기에 주류 언론들은 피해를 당한 한인들이 평소에 인종차별을 심하게 했기에 흑인들에게 공격을 당했다고 보도를 했다.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가 없는 사건이 1992년 LA 폭동이다.

참으로 억울하기 짝이 없었다. 미국에서 교육을 받고 자란 1.5세들이 들고 일어났다. 우리는 동등한 대우를 받고 싶다며 여러 미디어에 나가서 한인커뮤니티를 대변하였다.

동등한 대우를 받고 싶다는 외침은 곧 미주 한인 이민사의 새로운 장을 여는 목표가 되었고 그런 대우를 받기 위해서는 타커뮤니티와 연대, 미국 사회 참여, 그리고 유권자 등록 투표 참여로 권익을 신장해야 한다는 구호가 되어 미 전역 한인 커뮤니티로 퍼져 나갔다.

그렇게 32년이 흘렀다. 우리는 미국에서 동등한 대우를 받고 살기 위해서 열심히 유권자 등록하고 투표에 참여했다. 그리고 연방의원 4명을 비롯하여 많은 주와 시에서 한인 정치인들이 배출되었고 한류까지 태평양을 넘어서 불어주었다.

그러나 2019년 코비드 펜데믹이 중국에서 시작되어 전세계를 강타하자 아시아계에 대한 혐오공격이 폭발하였고, 한인 커뮤니티도 삽시간에 공포에 빠지게 되었다. 그러나 한인들은 멈추지 않고 타 커뮤니티와 연대하고 협력하고 교육하면서 혐오공격을 극복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북미 대륙에서 처음으로 한인 2세 앤디 김이 아시아계 최초로 연방상원에 도전을 선언하였고 올해 선거에 당선이 확실시 되고 있다.
이제 LA 폭동 한세대가 지나갔고 새로운 세대가 시작이 되었다. 이제는 동등한 대우를 넘어 한인 커뮤니티가 미국사회에 많은 기여를 하여 존경받고 리더십을 인정받는 그런 커뮤니티로 발전해야 할 것이다.

그러려면 미국 평균 80% 이상 유권자 등록률과 투표 참여율을 만들고 말로만 2세들 하지말고 새로운 세대들의 리더십을 위하여 활동하는 단체들이 좋은 스테프를 구하고 좋은 프로그램을 개발할 수 있게 투자를 해야 할 것이다.

<김동찬/시민참여센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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