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 ‘AI두뇌 1위’ 조준
▶ ARM·인텔서 칩설계 대신 블루오션 ‘RISC-V’로 차별화
▶수직적층 ‘3D D램’ 조직 신설
▶AI용 메모리 주도권 탈환도
▶이재용, 글로벌 CEO와 회동
삼성전자가 미국의 반도체 연구개발(R&D) 조직을 확대 재편한 것은 인공지능(AI) 반도체 업계에서 독보적인 선두인 엔비디아의 아성에 도전하는 준비 작업으로 풀이된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등 삼성 최고위 경영진은 올해 글로벌 AI 회사 최고경영자(CEO)들과 잇따라 만나며 차세대 반도체 수요를 파악하고 있다.
◇RISC-V·마하1…AI 반도체 돌파구 찾는 삼성=현재 AI 반도체 시장의 1위는 엔비디아다. 다양한 데이터를 한꺼번에 병렬 연산할 수 있는 그래픽처리장치(GPU)로 구글·마이크로소프트(MS) 등 글로벌 데이터센터 회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삼성은 AI 반도체 업계에서 후발 주자다. 스마트폰용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에 뉴럴프로세싱유닛(NPU)을 탑재한 적이 있지만 고성능컴퓨팅(HPC) 서버용 칩을 설계한 경험은 없다. 삼성은 2030년 시스템 반도체 세계 1위를 노리고 있다. 기라성 같은 AI 반도체 회사들을 꺾으려면 차별화한 기술이 필요하다.
삼성전자와 APL 팀이 고안하는 차별화 포인트가 바로 리스크파이브(RISC-V)이다. 현재 반도체 디자인을 위해 필요한 설계자산(IP)은 영국 암(ARM)의 명령어집합구조(ISA)와 인텔이 만든 x86이 있다. 다만 이 IP들은 ARM과 인텔이 독점권을 쥐고 있어 높은 가격을 지불하고 라이선스를 사야 한다.
RISC-V는 IP 사용료가 없는 ‘오픈소스’ 형태다. AI 칩 설계를 위한 원가를 대폭 낮출 수 있고 비용에 대한 걱정을 덜어내다 보니 칩 기능 확장에도 큰 부담이 없다. RISC-V 시장은 아직 ‘블루오션’ 시장이다. 삼성이 빠른 속도로 RISC-V 기반의 AI 칩 양산에 성공하면 AI 칩 라이벌과 대등한 위치에 올라서서 경쟁을 펼칠 수 있다. RISC-V가 처음 태동한 미국에 전문 연구소를 설립한 이유 역시 이 계획을 빠르게 실행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삼성전자가 양산 계획까지 세우고 개발 중인 AI 반도체도 있다. 지난달 20일 주주총회에서도 공개한 ‘마하1’이다. 회사는 이를 실현하기 위해 미국 실리콘밸리에 AGI컴퓨팅랩을 설립하고 마하1 개발에 들어갔다. 구글의 자체 AI 칩인 텐서처리장치(TPU)를 설계한 우동혁 부사장이 이 조직의 리더를 맡고 있다. 경계현 삼성전자 사장도 최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마하1에 대한 고객들의 관심이 증가하고 있다”며 “생각보다 더 빠르게 마하2 개발해야 할 것 같다”고 밝히기도 했다. 반응이 좋다는 얘기다.
◇메모리도 혁신 도전…3D D램 선점 나서= 삼성전자는 D램 시장에서 40% 이상의 압도적인 점유율을 보유한 1위 회사다. 그러나 2022년 챗GPT 출현 이후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에서 2위 SK하이닉스에 주도권을 빼앗기면서 체면을 구겼다. 2019년 HBM 개발팀을 해체하면서 다가올 시장에 선제적으로 대처하지 못한 게 원인으로 꼽힌다.
삼성은 이 분위기를 역전시킬 만한 새로운 D램 개발에 몰두하고 있다. 3D D램이 좋은 예다. 이 메모리는 기존에는 평면으로만 배치했던 기억 소자들을 수직으로 적층하는 콘셉트다. 극자외선(EUV) 노광기 등 고가의 장비를 도입하지 않더라도 D램의 용량을 대폭 확대할 수 있는 혁신 기술이다. 이 D램을 구현하기 위해 삼성전자는 새로운 R&D 조직을 신설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본사가 있는 한국에서도 3D D램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지만 고급 인력이 많은 미국에서도 인재 확보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는 AI 시대에 맞는 시스템 반도체와 메모리 경쟁력을 동시에 업그레이드하면서 시장 수요 파악에도 나서고 있다. 이 회장은 2월 한국을 방문한 마크 저커버그 메타 CEO와 저녁 만찬을 했는데 고성능 반도체에 관한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눴을 것으로 추측된다. 여기에 1월 한국을 찾은 샘 올트먼 오픈AI CEO는 삼성전자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 경영진과 회동하기도 했다.
업계의 한 고위 관계자는 “올트먼은 엔비디아 솔루션만으로는 AI 인프라 투자에 한계가 있다고 느낄 것이고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업체로 삼성전자를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며 “삼성전자와의 만남에서도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를 드러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
서울경제=강해령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