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미국은 지금⋯] 전설이 되어 그가 돌아왔다

2024-04-16 (화) 김동찬/시민참여센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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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이는 흰머리에 나비넥타이(Bow Tie)를 하고 동네 사람들하고 웃고, 이야기 하고, 그들의 사정에 귀기울이면서 어깨동무하고 용기를 주던, 그가 저지 시티(Jersey City) 센트럴 에브뉴(Central Ave)와 보우얼스 스트릿(Bowers St) 코너에 떠난지 4년만에 영원히 돌아왔다.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나비넥타이를 하고 책을 들고 밴치에 앉아 그를 보고 싶어하는 동네 사람들을 활짝 웃는 얼굴로 반가이 맞이하고 있다.
2024년 4월 6일, 코로나 바이러스로 세상을 떠난지 4년만에 고 윤여태(Michael Yun) 전 저지시티 시의원을 기리는 그의 동상 제막식이 열렸다.

저지 시티 시장실과 시의회가 주관한 고 윤여태 시의원의 동상 제막식에는 저지 시티의 시장을 비롯한 모든 정치인들과 커미셔너들 그리고 맥 그리비 전 뉴저지 주지사까지 참석하였고, 뉴욕과 뉴저지 한인회장들과 그를 아는 동포들 그리고 그를 그리워 하던 그 동네의 많은 주민들이 참석하였다.


우박이 내리고 비가 내리다가 바람이 불었는데, 그의 동상에 씌워진 가림막을 열려는 순간 밝고 따뜻한 햇볕이 내리 쬐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은 모두 환호와 박수를 쳤다.
고 윤여태 의원은 그렇게 저지시티 센트럴 에브뉴로 돌아왔다.

그는 1982년부터 저지시티 센트럴 에브뉴에서 ‘가든스테이트 뉴스(Garden State News)’라는 비지니스를 운영했고, 1992년도에 저지 시티 최초로 ‘비지니스 활성화 특별지구(Special Improvement District)’라는 단체를 만들어 20년동안 회장과 이사장을 지냈다.

또한 동시에 20여년동안 저지시티 상인협회(Jersey City Merchant’s Council)의 회장을 지냈다. 이 기간동안 그가 주도하는 단체는 뉴저지 최대의 지역 페스티벌을 개최하였고, 지역의 번영을 위한 수많은 일들을 시정부와 함께 진행하여 센터를 에브뉴를 저지 시티 최고의 번영가로 만들었다.

처음부터 고 윤여태 의원의 리더십은 탁월했다. 이에 1992년 저지시티 개발기관(Board of Commissioners of the Jersey City Development Agency)의 이사로 임명되었고, 브렛 쉰들러 시장(Bret Davis Schundler)때는 부시장으로 활동을 했다.

그리고 나열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커뮤니티와 시정부 직책을 맡아서 저지시티의 발전을 위해서 쉬지않고 활동했다.
오죽하면 동네사람들이 무슨 일이 생기면 시의원이나 시장한테 가지말고 마이클 윤을 찾아가라고 할 정도였다. 그래서 시장이나 시의원들 그리고 시정부 커미셔너들이 마이클 윤이 전화를 하면 겁이나서 받고 그 누구의 요구 보다도 빨리 움직였다고 한다.

고 윤여태 의원은 모든 정치인들이 두려워하는 시민활동가였고, 그가 정치인이 되었을 때는 밤잠을 설치며 일을 하는 시민의 충복이었다. 그래서 코로나로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정치인, 공무원, 주민들, 그리고 수많은 언론들이 슬퍼했고 안타까워 했다.

그리고 생의 마지막까지 병상에서 조차 고민하고 진행했던 저지시티 센트럴 에브뉴 거리풍경 및 도로개선 프로잭트(Central ave Streetscape & Roadway Improvements Project)의 공사가 끝나고 완전히 탈바꿈한 거리를 흐뭇한 미소로 바라보면서 앉아있다.
한국인의 아들 저지시티의 주민 마이클 윤은 그렇게 저지시티의 전설이 되어 돌아왔다.

<김동찬/시민참여센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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