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슐랭 맛 떡볶이’에 담은 한국사랑
▶ 미슐랭 별 4개 ‘Rose’s Luxury’ 레스토랑 그룹 대표·오너셰프 MD 락빌 출생, 부인이 한인 2세…김치·닭도리탕 등 한식 즐겨
제임스 비어드 재단의 베스트 셰프 시상식에 참석한 애런과 한인 부인 김애리 씨.
- 떡볶이와 보드카의 조우
“나의 사랑하는 아내는 한국인입니다. 그녀를 위해 비법 떡볶이를 만들었는데, 정말 맛있어서 레스토랑 신메뉴로 내게 됐어요. 반응이 뜨겁습니다.”
이 즐거운 실험은 이탈리안 클래식 ‘카초 에 페페(Cacio e pepe)’를 파스타 대신 떡볶이 떡으로 만들어달라는 아내의 부탁에서 시작됐다. 천재 셰프의 손길을 거친 떡볶이는 ‘알 라 보드카’ 버전으로 탄생했다. 떡볶이에 보드카라니! 궁중요리나 반가 음식에 쓰여온 동글동글 조랭이떡으로 만든 ‘보드카 소스 떡볶이(‘Snow man’Tteokbokki a la vodka·왼쪽 사진)’가 지금, DC에서 가장 핫한 미슐랭 레스토랑 ‘로지즈 럭셔리(Rose’s Luxury)’에서 자랑스레 선보이고 있다. 오직 애런 실버맨(Aaron Silverman)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 네 개의 별을 가진 미슐랭 셰프
레스토랑의 귀재 애런은 파인애플 앤 펄스(Pineapple and Pearls 미슐랭 2스타), 로지즈 럭셔리(미슐랭 1스타), 리틀펄(Little Pearl, 미슐랭 1스타)의 로지즈 레스토랑 그룹 창업자이자 오너셰프다.
우리 지역 토박이로 1982년 메릴랜드 락빌에서 태어나 버지니아와 DC, 뉴욕의 내로라하는 식당들에서 커리어를 쌓은 그는 2013년 31세 나이로 로지즈 럭셔리를 오픈해 파란을 일으켰다. 상호는 애런의 친할머니가 피츠버그에서 운영했던 베이킹 비즈니스 명칭을 그대로 따온 것. 가족과 친구들의 전폭적인 지지 속에 출발한 로지즈 럭셔리는 이듬해 ‘본 아페티트(Bon Appetit)’ 선정 미국 최고의 새 레스토랑(Best new restaurant in America 2014)에 이름을 올렸고, 2015년 워싱턴포스트 ‘톱 10 레스토랑’ 1위에 등극하는 등 찬사가 이어졌다. 이윽고 2017년 미슐랭의 별을 받아 한해도 빠짐없이 지켜오고 있는 명실상부 DC 맛집의 대명사다.
- 군고구마는 김치와 먹어야 제 맛
애런의 부인 김애리 씨는 한인 2세대. 친구 소개로 알게 된 두 사람은 11년간 만남을 거쳐 3년 전 결혼했다. 이제 카카오톡까지 쓰는 한국사위 애런은 아내가 아플 때면 만사 제치고 곁을 지키며 ‘죽 당번’을 자처하는 사랑꾼이다.
“자상한 장인 장모님과 저의 한국인 가족들 덕분에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설날 장모님이 끓여주신 맛있는 떡국을 먹고, 조카 돌잔치에선 돌잡이를 보며 앞날을 응원했다. 어른이 주시는 막걸리와 소주를 마시며 자제력을 배우는 ‘주도(酒道)’도 익혔다. 여러 한국문화 가운데 특히 한식은 즐거운 영감의 대상이다.
커리어 초반 애런은 한식 기반의 ‘모모푸쿠’ 뉴욕 본점에서 한국계 미국인 셰프 데이빗 장과 함께 일했다. 그 경험에 더해 부인 김애리 씨 덕에 한식의 매력에 푹 빠졌다.
“일주일에 몇 번씩 집에서 전통 한식을 만들어 먹어요. 특히 좋아하는 건 닭도리탕, 물냉면, 그리고 군고구마에 김치를 말아서 먹는 거죠. 아내 요리솜씨도 좋지만 장모님 손맛은 또다른 차원입니다.”
- 세상에서 가장 기분 좋은 식당
셰프 애런 실버맨을 이야기함에 있어 독특한 다이닝 세계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기존 파인다이닝의 틀을 깨고 완전히 새롭게, 창의적으로 재해석해 갈채를 받아왔다.
“오랫동안 하이앤드 파인다이닝은 성당처럼 엄숙한 분위기에서 작은 양의 수많은 요리들을 긴 시간 제공받는 방식이었습니다. 셰프의 마스터피스, 미식의 정점을 고객을 숭배하듯 대한다고 할까요? 상상해봤어요. 파인다이닝도 파티처럼 즐겁고 신나면 안 될까?”
완벽함만큼이나 즐거움을 추구하는 그의 ‘유쾌한 미식(美食)’ 전략은 적중했다. 로지즈 럭셔리에선 단품 파스타 하나로도 대중을 열광시켰고, 파인애플 앤 펄스는 세상 쿨한 코스 요리로 천하의 셀러브리티들조차 가슴 뛰게 했다. 최근엔 케이터링 브랜드 ‘엑스트라 팬시(Extrafancy.com)’를 런칭해 패션쇼, 갈라, 전시회 등에서 감각적인 푸드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 ‘피플 비즈니스’의 선량한 힘
사람들은 궁금했다. 어떻게 애런은 단숨에 그토록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었을까? 테드(TED) 강연, 뉴욕타임즈 대니 마이어와의 대담 등에서 그 비밀을 밝힌 바 있다.
애런은 자신의 식당에서 음식 맛의 비중이 40%에 불과하다고 당당히 말한다. 중요한 건 좋은 맛과 서비스가 아니다. 궁극적인 목표는 바로 고객을 기쁘게(Feel good) 하는 것! 맛도, 서비스도 그 목표를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
덧붙여 식당은 서비스업도, 외식사업도 아니라고 말한다. 자신이 하는 일은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피플 비즈니스’라고 정의한다. 고객과 직원이, 사람들이 저마다 즐겁게 식사하고 또 일할 때 좋은 결과는 따라온다고. 이런 관점은 새롭고 의미 있다. 하지만 일이 아닌 사람에 중심을 두면 어려움이 많지 않을까? 그럴 때 어떻게 대처하는지 애런에게 물었다. 식당의 생명이라 할 ‘매니징’ 문제에 대해 말이다.
“맞습니다. 인간은 복합적이기에 때론 거짓말도 하고, 시간이 흐르면서 성실하던 직원의 마음이 변하기도 합니다. 그럴 땐 이 문구를 떠올리곤 해요. ‘나의 사람들이 좋은 결과를 내지 못하거나 고생하고 있다면, 잘하게 만들려거나 그들에게 내가 바라는 것에 초점을 두지 말라. 반대로 그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에 집중하라!’ 많은 경우 해결의 실마리가 거기 있었습니다.”
선량한 오너의 마인드는 기부로도 실천되고 있다. 유엔 산하 ‘월드푸드프로그램(WFP)’ 기부를 통해 로지즈 럭셔리에서 밥 한 끼가 팔릴 때마다 전 세계 배고픈 어린이에게도 소중한 한 끼가 제공된다. 지금까지 약 30만 끼의 식사가 기부됐다.
워싱턴을 대표하는 스타셰프 애런 실버맨. 우리의 도시를 쿨하게 하는 그의 레스토랑에서 수많은 셀럽, 스포츠 스타, 대통령들, 왕실 패밀리까지, 바로 지금 당신이 떠올리는 그 인물들이 자랑스런 ‘애런의 떡볶이’를 음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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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스민 박·V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