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삶과 생각] 실력(업) 따로 사람 따로

2024-04-10 (수) 조성내/컬럼비아 의대 임상정신과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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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는 스스로 움직이지 않는다, 운전자가 자동차를 운전해야 한다. 자동차와 운전자는 동일체이면서도 따로따로이다.

내가 살고 있는 이 삶은 분명히 내 삶이어야 한다. 그런데 내 삶이 내가 원하는 대로 살아가고 있는가? 하고 자문해보면 의심이 들 때가 많다. 우연인지 운명인지 모르지만 어떤 때는 내 삶이, 나 자신이 아닌 어떤 다른 힘에 의해서 살아지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더러 있다. 마치 나는 자동차이고 내 자동차를 움직이게 하는 운전자가 따로 있는 것 같다.

아마 일생에게 가장 어려운 고비가 고등학교 때인 것 같다. 고등학교 학생들은 학원까지 가서 밤늦도록 공부를 한다. 학부모들은 절이나 교회에 가서부처나 예수께 빈다. 자기네 자녀들이 명문대에 합격하게 해달라고. 그리고 합격하면! 빈 덕택이라고 위안을 삼는다. 불합격하면? 교회나 절을 원망하지 않는다. 다들 자기네 팔자 때문에 불학격한 것이라고 체념해버린다.


자, 문제는? 왜 어느 학생은 합격하고 어느 학생은 불합격했는가이다. 합격 불합격은 예수나 부처하고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합격 불합격은 ‘실력과 운’ 때문이다. 학생이 원한다고 해서 입학되는 게 아니다. 실력이 좋고 운이 좋으면 자연스레 합격한다. 실력이 나쁘고 운이 안 좋으면 당연히 불합격한다.

우선 실력에 대해 말해보자. 실력은 부처나 예수가 학생들에게, “야, 너 예쁘다.” “야, 너도 예뻐”하고 무료로 그냥 나누어주는 게 아니다. 실력이란 학생 스스로가 노력해서 쌓는 것이다. 매일 책을 읽고 열심히 공부해야 얻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운은 어떻게 해서 생겨나는가? 운이란 내가 좋은 운을 갖고 싶다고 해서 그냥 쉽게 가져지는 게 아니다. 운은 실력보다 더 복잡하다. 사람은 태어날 때 자기의 운(운명)을 갖고 태어난다. 그러니까 전생의 삶하고 관련이 있다. 당신이 주위를 한번 살펴보시라. 어떤 사람은 영특하고 건강하게 부잣집에서 태어난다.

이처럼 태어날 때 좋은 운(운명)을 갖고 태어나는 사람이 있다. 반면에 좋지 않는 운을 갖고 태어난 사람들도 있다. 학생이 대학에 들어가느냐 마느냐 하는 것은 학생자신이 아니다. 학생이 갖고 있는 실력이 입학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다. 학생은 실력과 운을 쌓는다. 학생이 쌓아놓은 실력과 운이 학생의 삶을 운영하고 있는 것이다.

운동선수들을 보라, 경기에서 이기고 지는 것은 선수들이 아니다. 선수들의 ‘실력과 운’이다. 이기고 싶으면 선수들은 매일 실력을 열심히 쌓아놓아야 한다. 실력이 선수들을 이기게 해준다.

실력이 선수들을 유명하게 해준다. 선수가 해야 할 일은 실력을 쌓는 것이다. 선수가 쌓아놓은 실력과 운이, 선수 자신이 아니라, 실력과 운이 바로 선수의 삶을 운영해가고 있는 것이다.

나의 삶도, 내가 내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게 아니라, 바로 내가 쌓아놓은 실력과 운(업)이 내 삶을 운영해가고 있는 것이다.

<조성내/컬럼비아 의대 임상정신과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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