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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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이 주신 크신 선물’

2024-04-09 (화) 채수호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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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35년전 8월 어느 날 친구지간인 4명의 청년이 서울 시내의 한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었다. 이때 브레이크 고장으로 정지신호를 무시하고 달려온 버스가 이들을 덮쳤다. 네명 중 세명은 달려드는 버스를 보고 급히 피해 화를 면했으나 뒤돌아보며 이야기하고 있던 조홍래 군은 그만 버스에 치이고 말았다.

푸른 꿈에 부풀어있던 대학신입생 조홍래 군은 이렇게 해서 젊디젊은 나이에 한쪽 다리를 절단하게 되었다. 두 살 때 어머니를 여의고 조부모 밑에서 자라던 조군에게 운명은 이렇게 또 한 번 감당키 어려운 가혹한 시련을 안겨준 것이다.

병상에 누워 절망 속에 어두운 나날을 보내고 있던 조군에게 어느 날 미국에서 소아과 의사로 일하고 있던 고모부가 찾아왔다. “홍래야, 너를 미국에 데려가 공부시켜 줄테니 아무 걱정말고 재활치료에 힘쓰거라” 고모부의 이 한마디는 암흑 속을 헤매던 홍래 군에게 희망의 빛이 되었고 삶에 대한 용기를 되찾게 해주었다. “고모는 시집 간 출가외인이니 절대로 폐를 끼치면 안 된다”며 극구 반대하시던 조부모님도 결국 조군의 미국행을 허락해주셨다.


고모부를 따라 미국에 온 조군에게 새로운 삶이 펼쳐졌다. 의사부부인 고모부 내외는 조군을 아들로 입양했고 비슷한 또래인 고종사촌 3남매도 친형제처럼 살갑게 대해주었다. 성격이 밝고 명랑한 조군은 자신이 가진 장애에도 불구하고 어딜 가든지 당당하고 씩씩했으며 주변사람들도 잘생기고 활달한 조군을 좋아하였다. 조군은 공부에도 두각을 나타내어 럿거스 대학을 졸업하고 콜럼비아 대학원에서 컴퓨터공학 석사학위를 받은 후 계속해서 스티븐스에서 수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고모부 내외분의 영향을 받은 조군은 뉴저지 사우스 오렌지에 있는 ‘이매큘레이트 컨셉션’ 신학대학에 입학하였다. 신앙과 학문에 대한 열정,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제로서 갖춰야할 성품과 덕목을 두루 겸비한 조군은 곧 뉴왁 교구 대주교의 눈에 띄었고 그는 조군을 신학대학 입학 1년 만에 로마의 그레고리안 신학대학으로 유학 보냈다.

2011년 조군은 사제서품을 받고 조홍래 베드로 신부가 되었다. 조홍래 신부는 현재 뉴왁 대교구의 ‘세인트 앤드류’ 소신학교 학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그는 신학대학 경영과 ‘그레고리안’ 신학대 박사논문 준비로 바쁜 가운데도 틈틈이 시간을 내어 한인들을 위한 사목활동에도 힘쓰고 있다.

조홍래 신부가 한인성당을 찾는 날은 그의 강론을 듣기위해 많은 신자들이 몰려와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다. 해박하지만 쉽고, 경건하지만 유머가 넘치는, 무엇보다도 사랑으로 가득 찬 그의 강론은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깊은 울림을 주고 있다.

불의의 사고로 절망에 빠진 처조카를 미국에 데려와 양육하고 교육시켜 훌륭한 컴퓨터공학자, 수학자, 사제로 키워낸 조신부의 고모부 내외분, 이제는 부모님인 이희영-조 루시아 박사는 조홍래 신부를 ‘주님이 주신 크신 선물’로 생각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자신들이 한 일이 아니라 오직 주님의 뜻과 은총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채수호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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