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왜 이승만인가-이승만 논란의 의미

2024-04-02 (화) 남태현 정치학 교수 메릴랜드 솔즈베리 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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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란이라는 게 이어지면 한도 끝도 없습니다. 사회가 합의하고, 이를 바탕으로 정치적, 법적 압력이 있어도 논란을 막지 못하기도 합니다. 독일이 한 예죠. 2차세계대전 이후 전쟁의 참혹함, 특히 유대인들을 비롯한 막대한 민간인 희생에 독일 사회는 깊은 성찰과 반성을 이어갔고, 이는 새로운 독일의 정치적 기반이 됐습니다.

나치 사상은 경시되고 제도적으로 금지됐습니다. 한국이나 미국에서 살 수 있는 히틀러의 책이 독일에서 금서인 것은 한 예입니다. 나치 미화나 칭송도 불법이죠.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신나치가 고개를 들고 있어 최근 독일 사회가 충격에 빠졌습니다. 구동독지역을 중심으로 나치주의가 퍼지고 있고, 이들에 의한 폭력도 늘고 있습니다. 심지어 나치주의 정당까지 등장했죠. 이들은 독일 민족주의를 외치며, 이민정책과 이민자들을 비난합니다.

한국에도, 미주 한국인 사회에도 비슷한 논란이 있습니다. 이승만에 대한 논란이 그것이죠. 지금 워싱턴에서도 그의 동상을 두고 논란이 뜨겁습니다.
동상을 찬성하자는 쪽은 이승만의 독립운동 경력을 듭니다. 또한 초대 대통령으로서 건국을 이끌었다고 주장하죠. 공산화를 막았다, 기독교 전파에 힘썼다고도 합니다. 과도 있지만 그의 공을 인정하자는 게 주된 주장입니다.


동상을 반대하는 쪽은 독립운동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대의 보다는 사욕을 추구했던 점을 지적합니다. 일본에도 유연한 자세를 보였고, 통일된 정부를 버리고 단독정부를 세워 반민족적이라는 비판도 합니다. 건국 이후 그의 정부는 독재와 부패로 얼룩졌던 것도, 그래서 결국 4·19혁명으로 끝났음을 지적합니다. 공과를 다 살펴도 과가 너무 크다는 말이겠죠.

사실 이승만에 대한 판단은 이미 나왔습니다. 대한민국 헌법의 정신을 밝힌 전문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ㆍ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한다. 이승만 정부의 불의를 명시하고 있죠. 이를 바탕으로 사회질서를 꾸렸습니다. 불의와 싸운 4.19혁명 기념일을 정부가 주관합니다. 4.19 희생자를 기리는 묘지도 국가가 관리합니다. 그 유공자 자녀들에게는 다양한 혜택이 주어집니다.

4·19혁명이 물리친 이승만의 불의를 논하는데 그가 어떤 공을 세웠던 그의 불의는 불의일 따름이죠. 그리고 대한민국은 이승만의 불의와의 투쟁을 존재 근거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커피믹스에서 커피와 설탕을 따로 평가할 수 없듯, 이승만과 그의 불의를 따로 떼어놓고 평가할 수는 없습니다. 이승만을, 그래서 그의 불의를 기념하고자 하는 주장은 지금 서있는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정도의 판단은 다 할 수 있습니다. 이승만 동상을 주장하는 이들이 몰상식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장을 하는 것이죠. 그럼 우리는 그 주장의 옳고 그름보다는 그 배경에 주목해야 합니다. 왜 자꾸 이런 주장이 나오고, 동조를 할까요? 이는 그들의 주장이, 즉 이승만은 국부이고 그 공을 기억해야 한다는 주장이 남한의 민족주의와 맞닿아 있기 때문입니다. 남한 민족정체성의 가장 큰 두 축은 반공주의와 친미 사상입니다. 진보적 사람도 공산주의는 왠지 불편합니다. 미국을 비판적으로 보는 이도 한편으로 동경하기 쉽죠. 저와 독자 대부분도 미국으로 온 사람들입니다. 한국의 현실은 어떤가요. 남한 정치, 군사, 안보는 미국에 의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미국에 일방적으로 의지하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죠.

해방 전후 남한의 현실은 미국에 의지하게 했고, 반공의 선봉장으로서 친미 사상에 취했습니다. 친미 사상이 깊어질수록 대미 의존은 더 심해졌죠. 남한 민족주의와 대미 의존은 서로가 서로를 더 강하게 만들어 오늘의 남한사회가 됐습니다. 그러니 반공주의와 친미 사상의 화신인 이승만 동상을 세우자는 목소리가 상식적이지 않게 이어질 수밖에요.
이승만 논의의 핵심은 그의 공이나 과가 아닙니다. 그의 동상도 아니죠. 대신 우리는 남한 사회의 정체성이 무엇인지를 직시하고 여기에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반공주의와 친미 사상이 21세기에 맞는 생각과 정서인가? 그것이 이끄는 미래는 어떤 곳일까? 대안은 없는 것일까? 정작 중요한 고민에 집중해야 하겠습니다.

<남태현 정치학 교수 메릴랜드 솔즈베리 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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