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지형 바뀌는 전력 시장

2024-03-28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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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 등 미국의 전력 시장은 점진적이고 아직 크지 않은 규모이긴 하나 생산과 공급의 기본 틀이 바뀌고 있다. 국가의 행정 시스템에 비유하면 절대적이던 중앙 집권제에서 지방 분권형 요소가 점차 눈에 띄게 더해지고 있는 것이다. 개솔린 만을 에너지 원으로 삼던 차가 차체 아래 장착된 리튬 배터리에 의해서도 구동하는 하이브리드 형으로 변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더 구체적으로는 전에는 전기회사에서 보내주는 전기만 받아쓰다가 에너지를 자체 생산해 쓰고, 남은 전기는 거꾸로 전기회사 쪽으로 보내기도 한다. 이에 따라 남은 전기의 저장, 송전과 배전 등에 신 기술이 필요하고, 전기료 조정 등 정확하게 예측하지 못했던 사회 경제적 파장도 만만치 않다. 전기는 꼭 발전소에서만 만들어야 하나? 발전소 전기 말고 ‘분산형 에너지 자원(DER)’으로 불리는 다른 에너지 원의 비중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가장 쉽게 눈에 띄는 것은 바로 지붕에 설치된 태양전지판 발전이라고 할 수 있다. 생산량이 미미하게 여겨질 지 모르나 성장세가 가파르다. 캘리포니아가 대표 주자다.

미 에너지정보기관(EIA)에 따르면 지난 2014년 연 7만 기가와트(GW) 좀 넘던 주택의 태양열 발전이 2022년에는 40만 GW 가까이로 5배 이상 늘었다. 발전 용량이 1메가와트(MW) 이하인 지붕 위 집열판에서만 모은 것인데, 티끌 모아 이제 언덕을 이루고 있다. 발표된 통계 마지막 해였던 2022년에는 태양열 발전의 증가량이 연 단위로는 가장 많았다. 이 같은 일은 각 주들이 태양열 에너지 생산에 다양한 세제 혜택과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데다, 환경 친화적인 공공정책이 소비자들을 설득하고, 태양 전지판 생산 원가도 떨어지고 있는 것 등이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미국의 주택 지붕에서 생산되는 전기의 3분의1 이상은 캘리포니아 산이다. 맑은 날이 많은 데다 쏟아지는 햇빛 양도 엄청난 캘리포니아는 천혜의 자연 조건을 갖추고 있다. 신축되는 단독 주택과 3층까지의 다세대 주택 지붕에는 솔라 패널 설치를 요구하는 등 친환경 정책 추진도 적극적이다. 상대적으로 비싼 캘리포니아의 전기요금도 지붕 위 발전을 부추기는데 한 몫을 하고 있다. 2045년까지 태양열과 풍력 등 재생 가능한 에너지만으로 전기를 생산하겠다는 것이 목표다. 캘리포니아에 이어 뉴욕과 뉴저지의 주택 태양광 발전량이 많고, 일조량이 많은 텍사스와 애리조나가 그 뒤를 잇고 있다.

절대 생산량은 많지 않지만 한 사람 당 지붕에서 생산되는 전기의 소비량이 가장 많은 곳은 하와이다. 화력 발전소 터빈을 돌리는데 필요한 기름을 모두 외부에서 들여와야 하는 하와이는 전력 생산 단가가 비싸 다른 어느 곳보다 태양열 전기의 시장 침투율이 높다. 하와이 주민 한 사람이 쓰는 지붕 위 전기는 2위인 캘리포니아의 한 배 반에 이른다. 하와이 또한 캘리포니아처럼 2045년까지 모든 전기를 재생 에너지로 조달한다는 계획이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분산형 에너지 자원’에 대한 의존이 커 갈수록 전기회사가 판매하던 ‘전통적 전기’의 수요는 줄게 된다. 팔리는 양이 적으니 판매 단가를 올릴 수밖에 없다. 이미 갖춰진 전력망은 어떻게 하나? 전기 판매가 줄어도 송전과 배전 시스템 등은 그대로 유지하고 손봐야 한다. 낡고 오래 된 송전선은 대형 산불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기후 변화로 바짝 마른 대지를 생각하면 전선을 땅에 묻어야 한다. 경비는 더 든다. 전기료 인상이 불가피하다. 캘리포니아가 지금 그 와중에 있다. 새크라멘토를 주시하면 전기요금 체계 재정비를 위한 일련의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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